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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라오스

다시 못볼 폭포를 찾아서, 라오스 팍세 볼러벤 고원

by 마리Mary 2020. 1. 25.

팍세는 캄보디아 및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참파삭 주에 있는 작은 지역이다. 왓 루앙이라는 사원이 안 봤지만 볼거리 중 하나다. 그보다는 볼라벤 고원을 보려고 했다. 이 볼라벤 고원은 고원지대이지만 경사가 매우 완만해서 달리다보니 어쩐지 높은 곳이 되는 곳이다. 천 미터 이상의 고원이라서 여름에도 시원하다. 이곳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커피농장으로 개발되었다. 지금도 라오스에서 커피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매년 10월 쯤 커피콩이 붉게 익어 11월에 수확하고, 2월엔 하얀 꽃이 만발해서 커피농장에 눈이 내린 것 같은 모습이 된다고 한다. 

 

볼러벤 고원Bolaven Plateau은 단체투어보다는 혼자 가고싶었지만 스쿠터는 운전할 줄 모르므로 투어를 예약했다. 그런데 예약이 잘 되지 않았는지 뒤늦게 연락이 와서 오후에 혼자 투어를 가게 됐다. 스스로 운전한다면 반시계방향으로 구경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탓 판 폭포-탓 유앙 폭포-팍송-커피농장-탓항 탓로 탓소웅-파수암 폭포를 보는 full 투어를 하고 싶었지만 물거품이 되었다.

 

투어는 캡틴 훅이라는 커피 전문가(추정)가 있는 마을에 가서 이것저것 한 다음 폭포 두 개를 보고 오는 일정이었다. 이 커피 전문가(추정)가 사는 것 같은 마을에 가기는 했는데 늦게 가서 커피 전문가(추정)는 보지 못했고,

 

소와 말과 멧돼지는 많이 봤다. 뜨거운 태양아래 붉은 흙바닥에 나뒹구는 아기 멧돼지는 참 귀여웠다. 팍세의 볼라벤 고원이 커피로 알려진 건 사실이라 커피를 기대하고 갔다면 많이 실망했겠지만 내가 원한 건 단지 폭포였기 때문에 별 아쉬움은 없었다. 폭포가 정말 보고싶었어서 폭포 바로 앞에 있다는 리조트를 예약할까 싶었지만 너무 비싸고 예약도 힘들어서 그만뒀다. 이 리조트 안에 폭포가 있는 거라, 폭포를 보려고 리조트 안에 들어갔을 때 겉만 잠깐 봐도 참 좋아보였다.

 

이 폭포는 탓 유앙이다. 폭포가 거대하고 물안개가 잔뜩 낀데다 물방울이 튀기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야한다.

 

난 내 인생에서 이렇게 크고 화려하면서도 단조로운 폭포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폭포의 이름은 탓 판이다. 용의 눈물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두 포인트에서 얇게 흘러내리는 게 용이 흘리는 눈물을 닮았을까 말았을까 생각되지만 또 용이 울 일이 뭐가 있나 싶기도 하다. 이때쯤엔 해가 슬쩍 지려고 하던 시점이라 아름다운 동남아의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태국의 왕궁에서도, 루앙 프라방의 푸시힐에서도 느꼈듯 이쪽 지역의 붉은 석양은 말로는 표현 못할 뜨거움이 있다. 이 폭포들의 웅장함과 단순함은 무언가 이상의 것이었다.

 

팍세는 사실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외국인 관광객을 두고 저들끼리 히죽대던 가게 종업원들이나 바가지 미니밴기사나 사기치려드는 환전가게를 하룻밤~하루아침에 모두 겪었기 때문이다. 결국 배고파 뒤지겠는데도 그 식당은 그냥 나와야했고(아마도 내가 들어갈 때 나온 외국인 커플에게도 이랬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가지 미니밴기사가 데려간 사기치려는 환전가게는 정말 빠져나오기 곤란했다. 환전은 공항에서 하든 시내에서 하든 계산기는 꼭 자기것을 이용하고 현지인이 데려가려는 환전가게는 웬만해서는 피하자. 참고로 팍세 호스텔에 쓰여있던 팍세 공항부터 호스텔까지의 셔틀은 35,000낍.

 

팍세에서 좋은 기억은 딱 두 가지인데, 이 폭포들과 숙소 근처 현지인들의 현지인들에 의한 현지인들을 위한 길거리 식당에서 먹은 까오삐약이었다. 까오삐약은 쌀국수인데, 구운 닭고기가 들어가있어서 기름이 동동 떠있다. 한입 떠마시면 이것이 고기국물이다 하는 맛인데도 향신료때문인지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게다가 고기 양도 많았고 각종 야채들과 숙주가 곁들여져 나왔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 놓인 물은 생수가 아니라 차였다. 나는 딱히 맛있는 식당이 아니더라도 생수가 아닌 차가 나오면 감동을 쉽게 받는데 이곳은 맛까지 있었으니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다. 이런 한끼식사가 만 낍 밖에 안 한다는 것이 기분 좋다기보다 미안한 정도였다. 게다가 사장님은 두꺼운 면이냐 얇은 면이냐를 영어로 물어봤으니 지상 최고의 호스피탈리티 정신을 겸비하신 분이었다. 

 

까오삐약, 10,000낍(약 1,300원).

 

아름다운 식사를 하고 멋진 폭포들까지 봤지만 내 최종 목적은 까오삐약이 아닌 시판돈이었다. 시판돈은 4천개의 섬이라는 뜻이다. 호주-동남아 여행을 돌이켜볼 때 아직도 감탄 뿐인 곳 둘을 고르라면 하나는 뉴질랜드 테카포 호수의 푸른 빛, 다른 하나는 라오스 시판돈이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정말 '뜻밖의' 여정이었다.

 

참고로 참파삭 지역에 앙코르왓의 원조라고 불리는 왓푸 사원이 있다. 사원 내부까지 일명 신의 세계로 이르는 길로 불리는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한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거기까지는 왕복 20km. 당연히 안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