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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남섬

하이킹을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뉴질랜드 레이크 테카포

by 마리Mary 2019. 4. 10.

 

레이크 테카포로 출발하는 시각은 9시다. 마지막으로 퀸즈타운의 레이크프론트를 감상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키위익스피리언스의 타이트한 일정은 여행객들을 부지런하게 만들곤 했다. 나가보니 퀸즈타운에 머물던 며칠간은 날이 계속 화창해서 이미 호숫가를 두른 산의 눈은 녹아버리고 없었다. 확실히 퀸즈타운은 설산이어야 예쁜 곳이다. 얼마나 예쁘냐면, 퀸즈타운이 온통 새하얘질 겨울에 다시 오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퀸즈타운에서 레이크 테카포까지는 6시간이 걸린다. 중간에 트위젤이라는 곳에 잠시 정차한다. 사람들을 픽업하거나 드랍오프하고 마트에도 들리고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서다. 레이크 테카포에는 별다른 마트가 없다. 그 이후엔 푸카키 호수에 들린다. 푸카키 호수는 세로로 긴 호수로, 화장실 하나 밖에 없는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푸카키 호수에서 트위젤에서 산 고기파이와 우유로 간식을 먹었다. 푸카키호수는 아름다웠다. 이쯤되면 예쁘다 예쁘다 소리가 지겨워지지만 거칠어서 멋진 북섬과는 달리, 남섬에서부터는 정말 새파란 호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풍경이 갈수록 예뻐지는 건 사실이다. 프란츠 조셉부터 레이크 테카포까지는 빙하가 있기 때문에 호수물이 흰 물감을 탄 바다색이다. 흰빛이 도는 하늘색으로 꽉 찬 호수를 보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왔는데 세상에. 키위버스가 출발해서 푸카키 호수 주차장을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저기요 너 어디가? 너무 놀라서 달렸지만 그 운전석에서 내가 보일리가. 거대한 초록색 키위버스는 멀어져갔다.

 

한 도시에서 키위버스는 하루에 딱 한 개만 운행한다. 퀸즈타운에서 레이크 테카포로 가는 버스는 딱 저거 하나 뿐이다. 저걸 놓치면 푸카키에서 노숙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짧게 스쳐지나갔고 눈앞에 보이는 티코만한 코딱지만한 자동차 창문을 두드려 뒷문을 열어제꼈다. 그리고 랩하듯이 나 저거 타야하는데 쟤네가 나 빼고 출발했어 저거 놓치면 절대 안되는데 저 버스 따라가주면 안될까? 말했더니 고맙게도 타라고 했다. 출발하며 어디가냐 묻고 나 레이크 테카포 간다고 했더니 다행이야 우리도 거기 가거든 해줬다. 키위버스 드라이버를 멈추게 하려고 오피스에 전화를 했는데 나 지금 낯선사람들 차로 따라가고 있어 쟤 운전 진짜 빠르게 한다 했더니 그쪽에서 드라이버한테 연락을 하려고 했다. 그래도 드라이버는 운전에 너무 심취해있어서 결국 그 다음 포토스팟인 the church of the good sheperd에서 키위버스가 멈추고 나서야 나는 그 낯선사람들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선한 목자가 그곳에 교회를 세워 관광 명소가 되어 다행이었다. 키위버스가 막 출발할 때에 비슷하게 출발하려던 경차가 있어 다행이었다. 또 그걸 바로 잡아타 부탁할 철판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근데 그 때는 너무 다급해서 바로 따라가야만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곳인데 사진을 찍고나서야 알았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지판이 한국어로도 있었던 걸 보고 여기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는 곳인 걸 알았다. 이곳은 푸카키 호수와 테카포 호수 사이에 선한 목자의 교회the Church of the Good Shepherd다. 이런 호수를 보며 기도한다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기도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이뤄지는 게 아닌가? 누군가에게 기도하기엔 너무 평화로운 곳이다. 당일이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키위 익스피리언스로부터 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버스가 날 놓고 간 것에 대한 보상으로 레이크 테카포에서의 숙박비 하루치를 지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버스를 놓친 것 치고는 간단히 해결됐기 때문에 그정도로 큰 일이었나?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알겠다고 하고 결제 영수증을 보냈다. 

 

 

레이크 테카포에서 할만한 건 마운트 존 서밋 하이킹이다. 숙소가 모여있는 곳에서 산 쪽으로 걸으면 위 사진의 표지판이 보이는데 여기서 MT. JOHN WALKWAY 1 HOUR짜리로 가면 된다. 기둥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표지판의 2 HOUR 짜리는 내려올 때 걷는 게 좋다. 한 시간 짜리는 울창한 숲길을 걷는 거라 별달리 보이는 풍경도 없고 숨이 차는 거라 빨리 정상을 보는 게 낫다. 하산할 때 멋진 풍경을 보면서 천천히 내려오려면 2시간짜리 코스는 아껴두는 게 좋다. 갈 때도 올 때도 2시간 짜리 트랙을 이용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트레킹은 시작하면 항상 그렇듯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아무도 안 시키는데 이거 한다고 뭐 주는 것도 없는데 생각이 들지만,

 

 

이런 건 올라와야 볼 수 있다. 이 부근의 모든 호수를 비롯해 레이크 테카포는 빙하가 녹은 물이기 때문에 날이 흐리고 구름이 껴도 눈이 부신 하늘색이다. 차로 올라올 수 있는 도로도 있고, 밤하늘 투어를 하는 천문대 mount john observation에 넓은 주차장도 있지만, 차끌고 와서는 발로 걸어 올라와 아까까지 있었던 조그만 마을 앞의 거대한 테카포 호수를 내려다볼 때의 감동을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그래서 요상하다. 맛있는 걸 먹으려면 배고파야하고 놀고싶으면 일을 해야하고 감동을 느끼고 싶으면 고생을 해야 된다. 예전엔 고생할 바엔 감동도 안 느끼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호수 쯤이라면, 이런 아름다움 정도라면 정말 살면서 구경해볼만 하다.

 

여기서는 모두가 사진에 미쳐있다. 한발짝 걸을 때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어도 모자란 곳이다. 천문대에 카페가 하나 있지만 카페 앞 잔디밭에 앉아서 호수를 보면서 싸온 점심을 먹었다. 바쁜 카페에 들어가서 물도 보충하고 티슈도 조금 썼다.

 

 

이 트랙 꼭대기에 있는 마운트 존 천문대에서는 별을 관측할 수 있다. 유네스코에는 밤하늘보호공원dark sky preserve이라고 해서 까만 밤하늘도 문화유산이라고 지정을 해놓는데 레이크 테카포도 그 중 하나다. 지금 검색해보니까 한국에도 경상북도 영양이 지정돼있다고 한다. Dark sky preserve가 있는 국가로는 미국과 캐나다가 압도적으로 많다. 처음으로 밤하늘보호구역이 된 곳은 퀘벡하고 우타에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레이크 테카포도 세계에서 가장 별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내가 머물던 때의 레이크 테카포 밤하늘은 구름이 너무 껴서 마운트 존 천문대에서 하는 big star gazing 투어는 신청하지 않았다.

 

 

밤하늘은 못 봤지만 이 마운트 존 서밋을 기점으로 하이킹이 너무 좋아졌다. 또 산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돌이켜보면 예전엔 뒷산에 놀러가는 것도 좋아했는데 커가면서 산이란 게 재미없고 놀것도 없고 힘들기만 한 곳이 됐었다. 요즘은 어딜 가도 산이 솟아나 있으면 그렇게 예쁘고 멋있다. 물론 여전히 땀흘리는 건 달갑지 않지만.

 

 

레이크 테카포 숙소에 머문다면 아마도 레이크 테카포 부근의 트레킹 코스를 정리해둔 종이가 리셉션에 있을 거다. 거기에 보면 마운트 존 서밋 트랙이 두 가지나오는데 하나는 mt. john summit이고 다른 하나는 mt. john summit & lakeshore다. 앞에서 봤던 1시간 짜리, 2시간 짜리가 이것들인데, 마운트 존 서밋이 숲만 있고 짧은 1시간 짜리고, 서밋 앤 레이크쇼어가 두 시간짜리 조금 긴 코스다. 사진은 두 시간 짜리 트랙에서 하이킹을 시작할 때 찍은 사진인데, 내려가면서 옅은 꽃밭과 넓은 들판, 또 저 멀리로는 눈과 빙하로 덮인 산들이 보여서 정말 장관이다. 그런데 이 길을 걷다보면 양떼가 있는 곳을 지난다. 슬쩍 다가가면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는 양들은 귀엽지만, 양이 싼 똥이 정말정말 많다. 냄새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지만 밟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폭스빙하에서 다친 발목이 완벽히 낫지 않았던 때여서, 후커밸리 트레킹을 앞두고 숙소에 누워서 할까말까 고민했던 트레킹이었는데 뉴질랜드에서 한 트레킹 중에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이었다. 3시간 정도의 코스지만 식사하고 구경하고 정상에 오래 있어서 5시간 반이나 걸렸다.

 

뉴질랜드 당일치기 하이킹 코스에서 가장 유명한 게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후커밸리 트레킹인데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은 타우포에서 왔다갔다하는거고, 후커밸리 트레킹은 마운트 쿡의 일부인 후커밸리를 트레킹하는 것으로 레이크 테카포에서 왔다갔다할 수 있다. 버스업체는 cook connection인데 레이크 테카포, 마운트 쿡 빌리지, 트위젤 이 세 곳을 연결하는 버스업체다. 여기서 레이크 테카포에서 마운트 쿡 왕복 버스를 예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