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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라오스

시판돈: 뜻밖의 여정 | 참파삭, 시판돈 가는법, 시판돈 지도

by 마리Mary 2020. 1. 30.

Wikipedia, edited

지도란 공부할 때 마주치면 저주스럽지만 저주스러운 딱 그만큼 유용하지 아니하지 않냐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라오스에 발을 디딘 것은 북부의 루앙 프라방이었고 그 다음이 비엔티안 수도 지역이었다. 여기까지가 라오스 북부라고 할 수 있고 나머지는 라오스 남부인데, 라오스 남부로 가는 사람들은 보통 중간지점인 팍세에서 잠시 머문다. 팍세는 참파삭의 북쪽에 걸쳐져 있는 작은 도시로, 공항이 있다. 나는 비엔티안 공항에서 팍세 공항까지 비행기로 이동했다. 팍세에도 왓 루앙같은 유명한 절이 있지만 시판돈으로 가는 중간지점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루만 머무르려 하다가, 볼러벤고원 투어가 궁금해 이틀을 머물렀다

 

시판돈의 시판은 사천, 돈은 섬이라는 뜻이니 시판돈은 사천 개의 섬이라는 뜻이다. 어떤 육지같은 게 아니라 라오스 최남단인 참파삭 근처의 군도를 시판돈이라고 부른다. 시판돈은 위 지도의 champasack 지역에서 까만별을 붙여놓은 곳에 있다. 저 까만별을 붙여놓은 시판돈 지역의 지도는 아래 사진과 같다.

 

이쪽 지역의 섬 중에 숙소가 있는 건 돈뎃, 돈콘, 돈콩이다. 돈콩은 사진 그대로, 가장 큰 섬이고 유일하게 육지와 이어지는 다리가 있는 섬이다. 내가 가려고 한 곳은 돈뎃이나 돈콘이었다. 이 섬들의 숙소들에 묵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폭포를 보러 다니거나 산책하는 게 이 시판돈에서의 일과다.

 

먼저 팍세에서 출발해 무앙참파삭이란 곳으로 향하는 게 시판돈을 가는 첫번째 여정이다. 팍세와 무앙참파삭 모두 첫번째 지도의 참파삭 주이긴 한데, 첫번째 지도의 까만별까지 이동하려면 팍세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무앙참파삭에 가야한다. 여기까지는 팍세 시장에서 현지인들과 썽떼우를 타고 갈 수 있다. 나도 처음엔 이걸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볼러벤 고원 투어의 드라이버가 해주겠다 하길래 좋다고 해버렸다. 좀 비싸긴 했지만 차가 새차였는지 깨끗하고 쾌적해서 됐다고 하기 힘들었다.

 

무앙참파삭에서의 숙소는 Khamphouy Guesthouse(Ban watthong, Champasak, 10000, Laos)에서 묵었는데 창문에 살짝 틈이 있어서 모기 들어올까봐 휴지같은걸로 틈을 맞췄던 것 빼면 깨끗하고 좋았다. 무앙참파삭에서의 숙소는 저 게스트하우스 근처의 숙소들을 예약하면 된다. 반나카상으로 가는 교통편은 숙소에서 예약할 수 있다. 자, 반나카상은 또 뭐냐하면, 마을 이름인데, 돈콘과 돈뎃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는 곳이다. 이 나룻배를 타고 돈콘이나 돈뎃으로 가면 당신은 시판돈에 온것이다.

 

여기까지 한 번 정리를 해보면 라오스 북부나 중부에서 시판돈으로 가는 법은 이렇다.

 

1. 라오스에 입국하여 팍세로 향한다.

2. 팍세에서 무앙참파삭까지 이동한다.

3. 무앙참파삭에서 반나카상(첫번째 지도에서 까만별로 표시된 지역)까지 이동한다.

4. 반나카상에서 나룻배를 타고 돈콘이나 돈뎃으로 이동한다.

 

이동과 이동과 이동의 기간이고, 이곳이 동남아라는 걸 생각하면 이 일련의 과정은 쾌적하거나 유쾌하지 않다. 또 이 과정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곳들이 내가 여길 갈 때만 해도 없었어서 오랫동안 검색을 해야했다. 게다가 지역 명은 왜이렇게 헷갈리는지 섬이름은 다 비슷비슷하고 팍세가 참파삭 주인데 팍세에서 참파삭으로 이동한다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중에 도착해서야 알았지만 무앙참파삭 지역을 간단히 참파삭이라고 해서 헷갈렸던 것이다.). 이것저것 찾아보지만 답이 없는 상황이 되자 브룸에 가려고 했을 때가 떠오르며, 짐작할 수 있었다. 가려는 곳이 촌구석인데 관광지라면 그곳엔 인터넷에 잘 올라와있지 않을 뿐이지 정해져있는 확고한 시스템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딱 이 말이 정확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곳이다.

 

하지만 확고한 시스템이 있다고 해서 속이 터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무앙참파삭에서 반나카상으로 가는 길은 꽤 험난하다. 일단 숙소 주인에게 나 시판돈에 갈거라고 하면 반나카상까지 가는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이 무앙참파삭에서 반나카상까지 가려면 먼저, 숙소에서 배를 타는 곳까지의 툭툭을 탄다. 배를 타는 곳은 위 4번의 과정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 배를 타고 메콩강을 짧게 건넌다. 이 메콩강을 건너면 반나카상까지 가는 미니밴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 여행객들은 미니밴을 기다리는 것인가 버려진 것인가 약간의 의문이 들 때 쯤 미니밴이 도착하면 여행객들은 욱여넣어진 채로 반나카상에 향한다. 이 다음부터 4번 과정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다시 3번 과정을 확장시키면 이렇다. 3-1)무앙참파삭에서 메콩강을 건넌다음, 3-2)미니밴을 타고 반나카상에 간다.

 

아침 8시반에 무앙참파삭의 숙소를 나와, 돈콘의 숙소에 짐을 푼 것은 12시였다. 도착해 샌드위치 하나 때리고 해먹에서 책읽다 자고 침대에서 책읽다 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여기가 무앙참파삭에서 메콩강을 건너는 곳이다. 말하자면 페리터미널인 셈이다. 툭툭은 숙소에서 나를 태우러 8시가 조금 넘어서 왔다. 나룻배는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8시 40분에 강 반대편에 도착했다. 강 건너편에 식당이 있다. 그 식당에서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콜라사먹는 걸 구경하다보면 한참있다가 사람과 짐에 비해 부족해보이는 미니밴 또는 승합차가 다가온다. 정확히 9시 18분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미니밴이 또 하나 올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차가 알맞게 도착하면 우리와 짐은 대략 두 시간 이상을 구겨진 채로 반나카상으로 향한다. 단 하나의 빈공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 생각이 참으로 대단했다. 이때 나는 뒷자리들에 비해 매우 쾌적한 앞자리에 타게 됐다. 운전자석과 조수석 사이의 간이의자에 앉기는 싫으니까 조수석에 앉으려 했는데 나랑 같이 앞자리에 타게 된 프랑스 아저씨가 덩치가 크니까 내가 간이의자에 앉으라는 드라이버의 말에 큰 스트레스를 받은 내가 절망에 찬 표정을 감출 수 없었는지 그 프랑스 아저씨(할저씨에 가까웠던 아저씨)가 무지무지 상냥하게도 나에게 조수석을 양보했다. 젠틀 프렌치 가이였던 것이다. 그 아저씨랑은 꽤 오래 얘기했는데(따라서 꽤 오래 그 아저씨는 그 간이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아저씨가 이 글을 볼 일은 없겠지만 정말 고마웠다.) 처음엔 유럽얘기를 하다가 그 아저씨가 프렌치라기에 그때 한창이었던 마크롱 얘기와 정치얘기를 많이 했다. 조끼시위나 프랑스의 고령화 얘기도 했는데, 뉴스로 다 알고있는 내용인데도 로컬의 입으로 들으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 미니밴은 멈추지 않고 반나까상까지 가지는 않는다. 중간에 돈콩에 가는 사람들을 내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반나까상을 통해서 가는 섬인 돈콘과 이름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운전수가 계속 강조해서 물어본다. 돈. 콩! 돈. 콩! 비기스트 아일랜드!

 

미니밴을 기다리는 중간에 웃긴 유럽아저씨가 하나 있었다. 이 아저씨는 지금 생각해도 좀 웃음이 나는데 이런 정비되진 않았지만 정해져있는 시스템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남자같았다. 계속 승합차 드라이버에게 반나카상에 가는 것 맞냐고 지속적으로 물어보고 그 드라이버는 계속 맞다고 대답하는데 무슨 시트콤 꽁트보듯이 웃겼다. 미니밴 두개가 온 상황도 저 아저씨 하는 짓도 이 답답함도 너무 웃겨서 운전수랑 캬캬캬 하면서 웃었는데 주변 여행자들도 따라 웃었다. 모두가 서로서로 짜증은 나는데 그렇다고 짜증낼수는 없는 순간이었다. 이런 우여곡절이나 괴로움마저 즐거웠다던지 처음이었다던지 하는 말과 웃음으로 포장하는 여행지의 미덕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숙소부터 반나카상까지, 70,000낍.

 

그리하여. 드디어. 반나카상에 도착했다. 이제 강가 바로 옆의 오피스에서 나룻배 티켓을 끊는다. 그럼 또다시 짐들과 여행객들을 배가 가라앉는 것 아닌가 싶게 싣고서 배는 돈콘으로 향한다. 이토록 간절히 어딘가에 '도착'하고 싶다고 느낀 적은 또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