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도 아름다웠으나 사진으로 보니 내가 찍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천상계처럼 생겼을 수가 있나 싶은 이곳은 라오스 루앙 프라방의 꽝시폭포다. 영어표기로는 Kuang Si Falls 또는 Kuang Xi Falls. 물감을 탄듯한 아름다운 밀키블루 빛깔은 물에 칼슘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꽝시폭포란 이름에서 꽝은 사슴, 시는 파다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한 노인이 땅을 파 폭포수를 발견했는데, 마법의 황금 사슴이 폭포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바위 아래를 집으로 삼아 살았다고 한다. 그 바위는 몇 해 전 지진으로 어딘가로 떨어졌다고 알고있다.
루앙 프라방의 숙소를 급하게 예약한 것도 있었지만 호텔 가격이 예상보다 훨씬 비싸서, 동남아 여행 중 처음으로 호스텔을 예약했다. 침대에 커튼도 있고, 호스텔에서는 흔한 엘리베이터 없는 지옥의 계단도 없이 모두 1층인 건물이었다. 조식도 정말 맛있었던 호스텔에서 꽝시폭포로 가는 교통편을 예약했다.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에코백에 비치타월을 챙겨갔다. 11시 반에 타서 12시 반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혹시 모르니 차 번호판을 찍어두고 꽝시폭포로 향했다.
입구에서 멀지않아 곰 보호센터가 있다. 따로 추가비용 없이 보호중인 곰들을 구경할 수 있다. 여길 지나쳐 조금 올라가다보면 폭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꽝시폭포는 3단 폭포고 29km로 크고 넓어서 수영할 수 있는 곳이 나름 다양한 편이다. 다이빙발판으로 쓰는 나무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가장 많다. 최대 수심은 써있기로 180m여서 수영하기 어렵지 않고 딱 재밌는 깊이였다. 카메라는 비치타월로 감싸 에코백에 넣고 수영했는데 관광지라 여행객들끼리 훔쳐갈 일도 없고 안전했던 것 같다. 수영하며 느끼는데 내 인생에 최고로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바로 수영배우기다. 지상 최고의 스포츠. 힘은 엄청 들지만.
미니밴 셔틀 40,000낍.
꽝시폭포 입장료 20,000낍.
그래서 수영은 1시간 이상 할 수 없다. 차가 다시 픽업할 시간인 3시 이전에 나와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코코넛을 잡다 만 도마 주변이 수산스럽다. 나무꼬챙이로 꿰어 통째로 구워지고 있는 민물돔 빠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길로 자리에 앉아 찹쌀밥과 모닝글로리 볶음과 함께 구운 생선을 시켰다. 마실 건 콜라와 수박주스. 생선이 나오자마자, 왜 이 가게 안 서양인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생선을 하나도 시키지 않았는지 바로 납득하고 말았다.
동양과 서양 음식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라면 그건 생선의 조리다.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생선요리라고 했을 때 이렇게 통째로 터프하게 손님상에 생선을 내오는 경우가 생각나진 않는다. 대표적으로 피쉬앤칩스가 그렇고 뼈가 있는 프렌치 생선요리도 동양권의 생선구이에 비하면 필레에 가깝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통생선구이를 시킨 게 너무 동양인 스럽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달려있는 이 박력. 머리와 발이 통째로 달려 팔리는 중국의 생닭이 생각나는 그런 터프함.
한 입 먹은 생선구이는, 양은 적었지만 내 최애원픽 굴비보다 맛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맛있었다기보다는 식감이나 맛이 완전히 달랐다. 천재적인 생선 뼈 바르는 기술을 보유한 나지만 생선 살이 너무 부드러워 먹을 때 숟가락을 이용해야 했다. 그렇다고 기름지지거나 짜지 않고 담백해서 딱 반 마리만 더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간장같은 양념이 발라져 바삭한 겉에 간하지 않은 속살에 모닝글로리 한 젓가락에 잘 뭉친 찹쌀밥.. 집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집밥처럼 편안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갈 때 까지도 궁금했다. 어떻게 생선 살이 그렇게 촉촉하고 보들보들했을까.
삥빠는 영어로 Beeng pa라고 표기하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그냥 grilled fish라고 많이 부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라오스 현지이름인 삥빠가 훨씬 더 많이 알려져있다. 삥은 굽다, 빠는 생선이란 뜻이다. 참고로 닭구이는 삥까이.
찹쌀밥 하나, 모닝글로리 볶음 한 접시, 삥빠 하나, 콜라와 수박주스 전부 다 해서 50,000낍. 6500원.
말레이시아부터 베트남까지 여행하며 어느정도 동남아시아 물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직원이 이거 한 장만 가져갔을 땐 조금 놀랐다.
라오스 음식을 찾아보며 가장 궁금했던 건 찹쌀밥이었다. 현지어로는 까오냐우(아니면 까오니아오)인데, 메뉴판엔 주로 스티키 라이스라고 써있다. 당분이 많아 더 쫀득하다. 왜 가장 궁금했냐면, 먹을 때 손으로 조물조물 뭉쳐서 먹으라는 믿기 힘든 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중에? ...손으로? ...비행기 신발 벗고 타라는 팁과 같은 맥락일까? 어쨌건 끈적이지 않아 손에는 묻지 않는다는 추가 정보가 있었다.
의심 끝에 마주한 첫 찹쌀밥은 사진의 흑미밥이었다. 돼지고기를 채워 튀긴 죽순과 옆에 곁들여진 라오스 젓갈인 빠덱이 맛있어보였지만 이 찹쌀밥을 정말 손으로 뭉쳐먹어야 하나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처음 몇 번은 수저로 떠먹다가 결심이 섰다. 어차피 주먹밥도 손으로 먹잖아. 소심하게 조금 떼어 조물조물 하고 먹으니 뭐랄까 아주 쫀득하게 잘 반죽된 맛이 났다. 그냥 뭉친 것 뿐인데 맛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나 생각이 든다. 밥이 갑자기 떡으로 변신한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좀더 생각하면 뭉친 찹쌀밥의 식감은 약밥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약밥은 밥이라고는 하지만 좀 더 떡에 가까운 음식이다. 단 맛도 매력이지만 쫀득한 식감도 약밥의 매력 중 하나인데 찹쌀밥이 딱 그랬다. 뭉치지 않은 찹쌀밥은 그냥 밥인데 조물조물 뭉친 찹쌀밥은 약밥이나 떡같은 느낌.
stuffed bamboo with sticky rice, 60,000낍.
사진의 미니 견과 모둠과 사진에 없는 물티슈는 말레이시아처럼 돌려보내지 않으면 별도로 돈을 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냥 조금 주워먹었다.
맛난 생선 정식을 먹고 4시에 여행자 거리에 도착했다. 픽업은 각자 호스텔에서 했는데 드랍오프는 어쩐지 여행자 거리 끝자락의 조마 베이커리였다. 드라이버가 사람들을 내려주며 조마 베이커리를 가르키며 여기가 그 조마 베이커리다 라는 식의 말을 했다. 조마 베이커리는 오가닉 커피를 파는 카페인데, 라오스의 유명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다.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팔고, 디저트도 함께 판다. 아침에도 열어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고, 늦은 오후면 의자에 늘어져있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오랜 동남아 여행으로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거나, 라오스에서 맛있는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면 좋을 곳이다.
루앙 프라방의 여행자거리는 이 조마 베이커리부터 씨엥통 사원까지의 약 2km 도로를 말한다. 2km면 걸어서 10분이면 끝나지만 여행자거리에는 낮 동안 산에 살던 소수민족들이 보따리를 이고 나와 파는 것들을 구경하는 게 일이다. 붉은 천막 아래에서 양말부터 반팔티, 스카프를 비롯한 옷가지부터 직접 만든 것 같은 팔찌, 목걸이들을 판다. 그게 아니라면 한 접시 당 만낍을 받고 파는 뷔페노상에서 야참을 먹는 것도 큰 재미다. 빨간 천막 위로 부드럽게 늘어진 라오스 사원의 지붕이 고새 반갑다.
동남아의 햇빛에는 이상한 마법이 걸려있다. 지켜보고 있으면, 새빨간 석양을 먹은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웃음이 났다. 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해가 질 때 딱 완벽해지는 기온을 즐기지 않는 것은 큰 낭비다.
이 빨간 색을 보니 루앙 프라방에서 하지 않은 한 가지가 막 생각났다. 왓 씨엥통 사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승려들의 탁발이다. 고요한 새벽 붉은 옷의 행렬과 건네지는 공양을 보고있으면 굉장히 엄숙해진다고 하던데, 뼛속까지 무교이고자 하는 내가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석했던, 이 여행 중 가장 어이없는 행동 탑10에 드는 사건을 고려해보면 서양인들에게 새벽탁발이 얼마나 특별해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게다가 전부 맨몸에 붉은 천을 두르고 머리는 죄다 밀었네. 닥터 스트레인지의 배경이 왜 인도인지 그들이 왜 마법사로 보였는지 이해가 될랑말랑 한다. 탁발은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구경하지 않았다. 억만금을 준다면 또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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