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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태국

태국 방콕 Wat Pho 왓포사원: 있는 줄도 몰랐지만 반가워요

by 마리Mary 2019. 10. 18.

 

더위도 잊게 할 정도로 화려했던 왓 프라깨우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와 방콕 도심의 신전bangkok city pillar shrine에 잠시 들렸다. 꽃을 들고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주스노점도 많다. 이 곳은 아니지만 다른 절에서 저 꽃을 들고 합장해보긴 했는데 꽃은 벌레도 좀 있고 은근히 무거웠다. 코코넛 주스를 한 잔 하고 호객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러 온 태국사람들을 보며 잠시 서있었다. 방금 섬유박물관에서 산 우산을 들고. 지나가던 서양인이 네 우산 정말 멋지다고 말을 걸어온다. 당연하지 얼마짜린데. 그건 그렇고 덥다. 더워. 덥다! 

 

하지만 이 때가 벌써 2시였으므로 꾸물대다간 왓포 사원을 충분히 들러보지 못할 것 같아 서둘렀다. 왓포사원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운영한다. 저 신전에서 왓포 사원 앞까지 툭툭을 타고 100밧을 냈다. 왓포 사원 앞의 상점가에서 홈 카페 싸 티엔home cafe tha tien이라는 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팟타이 하나와 커피프라페를 시키고 치킨윙도 시켰는데 치킨윙은 남아서 포장했다. 야매팟타이는 한국에서도 자주 해먹었는데 본토의 맛을 원없이 맛봤다. 숙주와 구운 두부는 꼭 들어가야했다. 말랑말랑한 쌀국수와 달착지근한 간장소스에 계란, 숙주, 두부, 파와 통통한 새우를 감싸는 새콤한 라임즙으로 만들어진 하모니 끝에 퍼지는 땅콩의 고소함. 한 국가명을 자기 이름으로 가지기에 충분한 맛이다.

 

툭툭 100밧. 

왓포 사원 입장료 200밧. 2019년부터 100밧에서 200밧으로 인상됐다.

팟타이, 프라페, 치킨윙까지 245밧.

 

왓포 사원에 입장했을 땐 4시였다. 왓 프라깨우보다는 작은 부지라서 둘러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아서 1시간을 조금 넘겨 구경했다. 왓포 사원 입장권에 생수 쿠폰이 한 장 포함돼있다. 그건 받자마자 생수로 바꿔 절반을 마시고 돌아다녔는데 스탭이 갑자기 생수 하나를 또 건네줬다. 난 이미 생수를 받았다고 몸으로 말했는데도 그냥 줬다. 많이 더워보였을까.

 

왓포에 왔을 때는 오후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 해가 서서히 져가는데, 그래서 햇빛이 멋지게 비치는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본당 주변의 화랑에는 불상도 엄청나게 많은데 400개가 조금 안된다고 한다. 한켠에 일렬로 늘어서있는 작은 입불상들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편안했다. 부처는 어디에나 있다는데, 혹시 내 카메라 속에도 계셨는지. 부처상을 보고있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나까지 힘이 빠지고 편안하게 명상이라도 하고싶어지는 기운이 풍긴다. 하지만 종종 이상하다는 생각도 한다. 부처는 곧 고행자였을텐데 어째 온통 금색이고 살집이 올랐고 편안해보이는지 말이다. 평화와 자비에 살이 찌신걸까? 그래서 입상과 좌불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인지부조화가 온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나 설법할 때의 모습을 형상화한 좌불은 더욱 그렇다. 그렇게 살찐 모습으로 깨달음을 어찌 얻으셨는지. 하지만 와불은 다르다. 와불은 좀 편안하게 생겨도 될 것 같다. 와불상은 부처가 열반에 들 장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를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라

 

누구세요?

 

갑자기 기영이 머리를 한 와불상이 튀어나왔다. 길이가 46m, 높이는 15m인 이 너무너무 거대한(4.6미터가 아니라 46미터) 크기의 와불상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황당하다. 이런 게 있다는 건 몰랐어서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으면서 왓포사원은 왜 어떻게 갔냐고 물으면 내 여행은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허술하다는 대답을 돌려드리겠다.

 

뭔가 간지럽히고 싶은 부처의 발가락. 저 상냥히 그려진 발지문이 눈에띈다.

 

그렇다 부처님 발은 평발이었다. 옛날 할머니집의 자개 장농이 생각나는 자개발바닥이다. 삼라만상 108번뇌를 상징한다고. 그리고 이 와불상을 복원하는 데 16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게 실감이 났으면 좋겠어서 세로 사진을 넣어봤는데 아무래도 실물을 담지 못하는 것 같다. 고개를 뒤로 확 꺾어야 부처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걸 알아주시길.

 

왓포 사원은 작고 큰 탑들이 90개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초대형 탑 4개가 있는데, 4가지 색의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이 탑들을 프라마하 쩨디라고 부른다. 옛날 왕들에게 헌정된 쩨디들로 초록색이 라마1세, 흰색이 라마2세, 노란색이 라마3세, 파란색이 라마4세를 상징한다고 한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왓포 사원을 벗어났는데 이때에는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붉은 노을이 사원을 뒤덮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불교사원은 해가 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과 만나면 그 분위기가 폭발한다. 그냥 나가려다가, 어딘가에 앉아 타오르는 발바닥과 얼굴을 식히며 노을이 발려진 사원을 감상했다. 붉은 탑을 배경으로 붉은 승복을 입은 맨발의 승려들이 오고간다. 절에서 사는지 고양이들이 몇마리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만둔다. 이 순간을 담아갈 수 있었으면,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태국의 3대 사원은 왓 프라깨우와 왓포, 왓 아룬이다. 왓 아룬 사원은 방콕의 젖줄 차오프라야 강을 건너면 바로 앞에 위치해있다. 왓포 사원을 나와 강쪽으로 걸어가다보면 페리가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두 개의 사원을 보고 완전히 뻗은 난 방콕 출국 전날은 쉬면서 보냈다. 숙소 옆에 세븐일레븐이 있기는 했지만 ATM이 없어서 ATM이 있는 세븐일레븐까지 걸어가던 중에 현지인들의 돗자리 노상을 봤다. 참으로 형편이 넉넉잖아 보이는 현지인들이 좋게 말하면 아기자기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잡한 잡동사니들을 팔고 있었다. 자물쇠 없는 큼지막한 열쇠, 어딘가에서 구르다 왔을 조각상, 종류별 크기별 색깔별로 늘어져있는 선글라스같은 것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선글라스들은 여행객들 게 아니었을지.

 

숙소 옆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젤리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념품보다는 생존템으로 스네이크 쿨링파우더를 한 통 샀다. 이 세븐일레븐은 매일저녁마다 들렸는데 망고맛 아이스크림과 리치맛 음료수를 열심히 사마셨다. ete라고 써있는 아이스크림이 맛있다. ma-muang이라고 써있는 게 망고맛. 

 

마지막 날엔 세븐일레븐에서 코코넛워터 한 잔과 근처 카페에서 타이 티 한 잔을 마시고 근처 작은 식당에서 팟타이를 한 번 더 먹었다. 구글맵스에 สเต็ก ตรอกมาศ / PadThai Bistro 라고 치면 나오는 곳인데 리뷰는 50개밖에 없지만 믿어주길. 태국에서 먹은 팟타이 중에 가장 맛있는 팟타이였다. 세상에 난 구운 두부가 그렇게 맛있는 건 줄은 처음 알았다. 작은 동네가게라 가격도 엄청 저렴하다. 60밧. 2300원. 떠나는 당일 공항 매점에서는 망고밥을 사먹었다. 태국 최고의 반전은 아마 망고밥일 것이다.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을 줄이야. 집에서 만들 수 있을까 싶어 찾아봤더니 올레시피닷컴에 몇 개가 올라와있다. 음, 어쩌면 나중에. 우선 레시피는 북마크를 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