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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라오스

시판돈이 왜 좋았냐 묻는다면, 종말의 폭포들(과 해먹)

by 마리Mary 2020. 3. 4.

저번 글에서는 시판돈에 어떻게 가는지에 구구절절 설명했었는데, 시판돈에 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했을 생각은 이런 것일 듯 하다. 그래서 거길 왜 간다는 거지?

 

시판돈에 반한 건 폭포 때문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폭포의 매력을 알고 나니 뉴질랜드와 라오스의 폭포는 때깔부터 달랐다. 뉴질랜드의 폭포는 생기있고 싱그러운 동화나라 숲 속의 폭포같았다면 라오스의 폭포는 좀더 황폐해진 아포칼립스 종말시대를 맞은 거대하고 웅장한 폭포같았다. 여기저기 볼 폭포가 많지만 시판돈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는 반나카상 남부의 콘파펭 폭포와 돈 콘의 솜파밋 리피 폭포다. 거대하고 넓어서, 폭포라기보다는 무섭게 굽이치는 강처럼 느껴진다. 아닌게 아니라 콘파펭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폭포로, 너비가 만 미터가 넘는다. 일단 돈 콘의 숙소에 짐을 풀고 돈 콘에서 머무르며 솜파밋 리피 폭포를 먼저 본 후, 반나카상으로 배를 타고 나가 콘파펭 폭포를 보기로 했다.

 

돈콘에서 머무른 숙소는 쬐만한 선풍기밖에 없어서 약간 덥긴 했지만 해먹이 있어 좋았다. 맨 아래에 좀 더 써놓았지만 해먹은 완벽한 침대였다. 돈콘에서 식사는 가던 식당만 갔는데, 별 기대 없었던 까르보나라도 꽤 맛있었다. 물론 까르보나라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토마토와 오이. 다들 동남아에 가면 동남아 국가 별 맥주를 많이도 마시던데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콜라만 주구장창 마셨다. 그러다가 만난 게 레몬주스인데, 고슬고슬한 세계 최고의 볶음밥과 마시는 레몬주스는 항상 실패하지 않았다. 레몬주스는 달고 탄산이 터지는 레모네이드같지 않고 신 레몬 맛이 강한 정말 '레몬주스'였는데 이게 참 맛있었다. 난 탄산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서.

 

그런데 생각해보니 라오스 카오찌를 못 먹었다. 사진과 설명을 보면 바게트빵을 쓰던데 베트남 반미와 아주 흡사해보였다. 고기가 듬뿍 들어갔다는데 이상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오믈렛에 토마토 두 개, 오이 네 개를 반을 갈랐지만 끝을 남긴 바게트빵에 끼워 먹는 셀프 샌드위치는 자주 시켜먹었었다. 가끔 빠리바게트에서 바게트빵을 보면 그 샌드위치가 생각난다. 별 기교는 없지만 솔직하고 상큼한 맛의 샌드위치.

 

시판돈은 달러를 주로 쓰는 캄보디아가 바로 강 너머에 있다. 국경지대라서 그런지 낍이 없으면 달러도 잘 결제된다.

 

솜파밋 리피 폭포는 줄여서 솜파밋 폭포 또는 리피 폭포라고 부른다. 자전거를 만낍에 빌려 리피폭포로 향한다. 자전거가 크고 핸들이 높게 올라와있는데다 길이 돌 투성이라 좀 불편하긴 하지만 곧 적응된다. 넘어질 것 같을 땐 페달을 계속 구르자. 단, 핸드폰은 가방 안에 넣어 자전거 바구니에 놔뒀는데 숙소로 돌아와보니 보호필름이 개박살 나있었다.

 

시판돈에서 보고싶던 건 콘파펭 폭포고, 리피 폭포는 곁다리로 보려고 했던 거지만 폭포로 가는 길도 조용하고 예쁘고 폭포도 거대하고 넓었다. 건기인 2월에 갔는데도 너무 웅장해서 폭포가 가장 멋질 때인 우기에도 또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솜파밋 폭포 입장료, 35,000낍.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콘파펭 폭포를 보려면 일단 돈 콘에서 배를 타고 반나까상으로 나가야 한다. 보통 숙소에 말하면 언제까지 나오라고 한다. 반나까상에서 툭툭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1시간이면 콘파펭 폭포에 도착한다. 투어가 끝나면 다시 타고 돌아와 배를 또 타고 돈콘으로 오면 된다. 

 

콘파펭 폭포 입장료, 55,000낍.

 

콘파펭 폭포는 메콩강 최하류에 위치한 폭포라서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대하다. 메콩강에 흐르는 모든 물이 모이는 곳,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폭포. 라오스의 폭포들이 뉴질랜드의 폭포들과 여러모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물 색도 다르고 넓게 퍼져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아름답기보다는 위엄이 있는 폭포. 지형은 완만하지만 물살이 너무 거칠다. 만약 우기에 와서 보게 된다면 잠겨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것 같다.

 

숙소에서 8만 낍을 내고 예약한 건 돈콘에서 반나카상으로, 반나카상에서 돈콘으로 가는 뱃길이었는데 콘파펭 폭포를 보고 돌아오니 갑자기 배가 없다고 했다. 예약한 종이를 보여주니까 티켓 파는 곳에서 좀 기다리라고 하길래 메콩강 한 쪽에서는 수영하고 저기선 물고기를 잡고 옆에선 빨래를 하는 라오스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다른 아저씨가 와서 어느 배를 타라고 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모는 배였는데 영어를 못하는지 별로 대화한 게 없어서 아쉬웠다. 이곳 애들은 자전거 타듯이 배를 몰았다.

 

돈 콘에서 콘파펭 왕복, 80,000낍.

돈콘으로 다시 돌아올 때 배를 놓치는 헤프닝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냥 반나카상으로 가는 배만 예약하고 돈콘으로 돌아올 때는 따로 티켓을 사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해먹, 해먹, 해먹.

 

한국에 캠핑붐이 한창이었던 때보다 훨씬 이전에 우리 가족은 매해 바다로 캠핑을 나갔었다. 그때 다른 텐트에서 나무 사이로 친 해먹을 탐내는 날 보고 아빠는 그랬다. 보기보다 불편하다고. 아, 그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긴 여행에서 마주한 해먹은 생각과 달랐다. 생각보다 훨씬 편하고 아늑했다. 동남아의 햇살을 받으며 흔들리는 해먹에 누워서, 몇 개월 전에 사놓고서 읽지못한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해먹은 책읽기에 완벽히 최적화된 침대라는 것이다. 해먹에 누우면 머리와 다리는 위로 들리고 배는 아래로 가기 때문이다. 책읽기 편한 자세를 찾는 것은 독서 중 풀 수 없는 난제와 같다. 배깔고 누워읽으면 곧 허리와 어깨가 아프고 위로 누우면 책을 든 팔이 아프고 옆으로 누우면 무거운 책은 손목이 나갈 것 같고 쇼파에 앉아서 읽으면 숙여진 목이 아프고 의자에 앉아서 읽으면 재미가 없다. 하지만 해먹은 읽다 심심하면 이리저리 흔들리면 되고 뱃살이 훌륭한 쿠션이 되니 아무리 노잼인 책도 한 두 챕터라면 읽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해먹에서라면. 게다가 이때 월경중이었으니 해먹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참 고상하게도 책이나 읽고 있던 건 정말 올바른 선택이었다.

 

해먹은 그저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멍때리기에도 아주 재밌었다. 동남아의 거리의 정자에 꼭 하나씩은 매달려있는 해먹에서 어린 아이들이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