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6월부터 약 한 달 간 열렸던 라벤더 축제에 갔지만 별다른 배경지식은 없었다. 일단 한국에서 라벤더를 키우는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걸 알고나니 키운다면 어디서 누가 왜 키우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돈이 얼마나 벌린다고? 라벤더하면 감미로운 향기가 흐른다는 남프랑스의 프로방스가 아닌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유럽은 끌리지 않는 여행지다. 막상 가면 (당연히) 좋겠지만 이런 마음만으로는 비행기표를 끊기 쉽지 않다. 그래서 라벤더라는 걸 실제로 보기는 이 날이 처음이었는데 이곳의 라벤더 팜이 두 번을 돌아도 피곤하지 않을 만큼 작은 것도 있었고, 애초에 키도 꽃송이도 작은 꽃이라서 환상적이라던지 하는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나들이정도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좋은 나들이를 하자고 강원도까지 오기는 쉽지 않지. 그래서 그럴까?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아서 그늘맡에 보라색옷을 입고 앉은 직원이 계속 일어나 들어가지 말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 축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한국 축제에서 가장 혐오하는 부분인 소음공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이 축제를 위해 박수를. 그런데 라벤더에서 감미로운 향기는 딱히 나지 않았다.
고성 하늬 라벤더 팜, 입장료 4000원.
웬만큼 좋은 게 있다 해도, 강원도는 그냥 가볼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그냥 가기에는 좀 어려운 곳이다. 만약 유럽이 옆동네라면 그냥 가볼수 있지만 한국에서 유럽까지의 비행시간과 비용을 고려할 때 내가 선뜻 가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강원도는 멀고 길도 좋지않은 산지니까. 그런데 그런 산지는 사진이 멋있게 나온다. 구례 산수유 마을에서 예상 밖으로 지리산이 참 멋있다고 느꼈던 것처럼.
입구 쪽에 작은 기념품 가게같은 것이 있다. 잠시 들려 햇빛만 피했었는데 라벤더 비누랄지 그런 건 조금 사고싶었다. 비누나 립밤은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이니까. 누군가에게 선물이 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마음에 드는 걸 사야하는데 취향타는 것들은 내가 아무리 좋다고 생각해도 선뜻 선물로 줄 수 없다. 하지만 비누나 립밤은 유난스런 향의 제품만 고르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잘 쓰지 않을까. 기껏 선물했는데 취향이나 사이즈가 맞지 않아 반품교환해야하는 일거리를 던져주거나, 쓸모가 없어 한쪽 구석만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선물이라 버리기 어려운 고민거리를 대뜸 안겨주는 사람이 되는 건 싫다. 무엇보다도 선물은 일상적인 품목이 가장 좋다. 매일매일 쓰다가 한 번은 이거 누구가 어디서 사다 준 거였는데 하면서 내 생각을 할 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들은 큰 돈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로드샵이나 마트에서 아무거나 사서 쓰게된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제품을 비싸고 좋은 걸로 바꾸는 건 몇번 보거나 입거나 쓰지도 않을 비싼 걸 사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일상제품이라고 해서 선물이라고 할 수 없을 가격대의 물건일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큰 착각이다. 생각보다 많은 방면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급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하여간에. 사지 않은 라벤더 비누를 뒤로하고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통일전망대로 향하면서 어쩐지 비무장지대에 가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코난이 한국에 왔다고 했을 때 비무장지대를 가는 걸 보고, 뉴질랜드 호스텔에서 만난 이혼남 미국아저씨가 한국에서 비무장지대에 갔었다는 걸 듣고, 서양인들은 이런 거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간 하도 대내외로 시달려온 한국인으로서는 짜증나고 성가시는 골칫거리일 뿐이고, 민족의 분단의 아픔 따위의 어떠한 감상같은 것에는 전혀 젖지 않는데말이다. 그래서 그 이혼남 아저씨에게는 거기에 왜 갔어? 거기 가면 그냥 걷고 듣는 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라고 물어보긴 했지만 알고 있다. 왜 그런 곳에 가고 왜 감상에 젖고 오는지는. 남의 나라이기 때문에 감상에 젖는 것이다. 당장 저그들 문제라면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을테니까.
통일전망대에 가려면 통일전망대 가기 전에 동떨어져있는 매표소부터 들려야한다. 주차를 하고 대표인 한 명의 신분증과 각 3000원의 입장료를 들고 매표소에 가서, 차종과 차량번호, 기타 신분정보를 적고 돈을 내면 된다. 출입신고서를 받아 다시 차에 타서 통일전망대로 출발하면 된다. 중간에 민통선 검문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제출하고 출입증팻말같은 걸 받아 앞에 올려놓는다. 입장시간은 기간마다 다른데 보통 4~5시면 끝이고 관광시간은 6시가 끝이다. 돌아갈 때 출입증 팻말을 반납하면 끝.
통일전망대에 가면 큰 건물이 두 개가 있는데 건물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 건물은 사람만 많지 경치보기는 별로고 오른쪽 낡은 건물이 앞에 유리판이 없어 경치보기에 좋다. 왼쪽 건물에서는 정해진 시간마다 경치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10분~20분 정도의 간격으로 길지 않았던 것 같아서 조금 기다렸다가 한 번 들어보면 괜찮을지도. 하지만 '통일'전망대이기 때문에 설명은 참 통일스럽게 한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생각나고 그 노래를 처음 배웠을 때 아빠한테 내 소원은 통일이 아니어서 이 노래가 별로라고 했더니 아빠의 그냥 하라는 대로 하라던 대답도 생각났다. 그리고 내 소원은 지금도 여전히 통일이 아니다.
사진의 열차길은 한때 대외적으로는 뭔가가 오갔었다는 사실만 보여주고 있다. 바다에서 중간에 튀어나온 섬은 송도로, 송도 옆의 나무가 울창한 부분이 군사분계선이다. 그 뒤로는 북한군 초소. 송도 멀리 굵직한 돌산은 구선봉이라는 금강산의 끝자락이라고 한다. 그 옆 바다에 작게 떠있는 섬들은 바다에 떠있는 금강산이라고 해금강이라고 부른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산이 금강산이 예뻤다. 중간에 있는 건물은 한국군 관측소고 멀리에는 북한 전망대도 보였다. 날씨가 좋아 금강산까지 보이는 날은 별로 없다면서 운이 좋다고 남자 안내원은 설명했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도 맑고 빙하에서는 날씨가 안좋아서 빙하캠핑까지 했으니 날씨운은 좀 따라주는 것 같다.
나갈 때는 건물을 등지고 서서 왼쪽에 나있는 길로 걸으면 바다가 보여서 기분이 좋다. 나와서는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하고 명태식해를 먹었다. 메밀전병도 먹었던가? 막국수와 냉면의 차이는 메밀면에 있는데 메밀 껍질도 넣고 거칠게 간게 막국수고 메밀 겉껍질만 까서 속살만 간게 냉면이라고 한다. 명태식해는 맛있고 그렇게 맵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다음날 배에서 불이났다.
그리고 속초에도 갔다. 늦어서 산책로 제한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형식적인 팻말만 세워놓고 아무 제지도 없었다. 노을지는 바다는 예뻤지만 이런 바다를 봐봤자 로트네스트 섬에서 본 인도양이 눈에 아른아른해서 속초는 볼 것 없었다. 하지만 강원도 나들이는 즐거웠다. 멀어서 그만큼 피곤하기도 했지만. 먼 발치에서 금강산 하나 보자고 왔다갔다 하긴 어려우니 라벤더농장까지 알차게 보고 온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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