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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남섬

폭스 빙하에서 캠핑하고 손발목을 잃다

by 마리Mary 2019. 3. 9.

 

프란츠 조셉에서 폭스로 가는 인터시티 버스는 인터시티 웹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프란츠 조셉과 폭스는 차로 20분에서 40분정도 걸린다.

 

폭스 빙하에서도 날씨는 좋지 않았다. 아침에 투어오피스에 갔을 때 예약자 이름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오늘 투어를 못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환불은 헬기를 탄 다음에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헬기만 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란츠 조셉 빙하 투어를 했을 때 내가 가져가야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나서는 폭스 빙하 투어를 갈 때는 따듯한 옷에 방풍방수 자켓과 바지를 입고 핸드폰만 들고갔다.

 

폭스 빙하 투어, 699뉴질랜드달러.

 

나로서도 여행기를 쓰며 느끼는 거지만 비쌌다. 700뉴질랜드달러면 한국돈 53만원정도 된다. 프란츠 조셉 빙하와 폭스 빙하에서 여행 자금을 모두 쏟아붓고 뉴질랜드 여행 내내 손가락만 빨고 다녔다. 빙하 안 보고 안 굶는 것보단 빙하 보고 굶는 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 투어가 비쌌던 이유는 빙하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8시간이 넘는 올데이 투어였는데, 나는 이것도 그저 빙하 위에서 오래 노닥거린다고 생각했다. 이 투어를 예약하고 투어오피스에 들어가 가이드를 만나고 투어안내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난 내가 뭘 예약한 건지 모르고 있었다. 투어 이름은 extreme fox였지만 그것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투어 전 이메일로 받은 안내사항에서 강조돼있던 건 가이드의 영어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져오는 카메라는 가벼워야한다는 것이었다. 영어는 안되면 알아서 오피스에서 빠꾸시킬거라고 생각했고 카메라는 가볍고 작아야 한다고 강조의 강조를 해놔서 dslr은 놓고 낡디 낡은 아이폰만 들고갔다. 보는 사람마다 언제 바꿀 거냐고 물어보고, 나로서도 지금까지 작동되는 게 신기한 아이폰5였다.

 

 

사람이 적고 많고를 떠나서 폭스빙하는 정말로 예뻤다. 폭스 빙하를 보고 프란츠 조셉 빙하는 어땠는지 전부 잊어버렸다. 빙하에 오르기 전에 빙하 헬기투어를 짧게 하는데 지구별은 너무 멋진 곳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별천지에서 빙하동굴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빙하동굴 안에서 갈라진 틈으로 하늘도 봤다.

 

 

한네스 착용하고 동굴 아래서 줄을 타고 기어올라오기도 했다. what a crazy trust exercise...

 

 

심지어 빙벽등반까지 했다.  빙벽등반은 두번이나 했는데 첫번째는 가이드가 핸드폰을 가져가서 찍어줬다.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 모습은 지금 봐도 웃기다. 내가 너무 찔찔대니까 가이드가 팔에 힘을 빼고 탈탈 털어보라고 했었다. 그 순간의 시원함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나랑 같이 투어를 했던 커플 중에 남자가 암벽등반은 발을 많이 쓰는데 빙벽등반은 발보다는 팔힘으로 몸을 끌어 올려야하는가보다고 했다. 

 

가이드는 두 명에 투어리스트는 나까지 세명이었는데 두 명은 독일인가에서 온 커플로 네팔 트레킹까지 한 사람들이었다. 근데 나는 이런 건 줄도 모르고 온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복근 운동은 고삼 때 했던 4초 매달리기였는데. 트레킹? 이땐 아직 통가리로 트레킹도 안 했는데 뭔 소리야. 여기까지가 내 손발목이 아작난 이유다. 발목이 너무 아파서 며칠 후 와나카 뒷산을 오르는 것도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도착했다. 손목이 너무 아파서 카메라도 들지 못했고 퀸즈타운에서 루지도 못 탔다. 근데도 억울하다거나 슬프지 않았다. 성가시긴 했지만 딱 그정도였다. 그정도로 이 격한 빙하 액티비티가 좋았다. 근데 예상치 못한 상황은 이 이후에 벌어졌다.

 

투어를 시작하던 아침만 해도 화창했는데 고산지대란 어쩔수가 없는지 갈수록 구름이 끼더니 헬기를 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나빠졌다. 그래서 하루 캠핑을 해야했다. 빙하 위에서. 그러니깐, 빙하 위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던 것이다.

 

캠프사이트로 이동하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바지를 잘못 밟아 빙하에 양무릎을 퍽하고 꼬라박았다. 드럽게 아팠는데 피는 안 난 것 같아서 괜찮다고 하고 걸었다. 너무 웃기게 무릎꿇은 게 웃겨서 웃음이 막 나올 정도로 걱정이 없었다. 캠프사이트로 가자 내가 한 투어와는 다르게 3시간 정도의 짧은 빙하하이킹을 마쳤던 팀들이 이미 텐트 아래에서 죽치고 있었다. 스탭들은 헬기가 뜰 수 있는지 없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모양이었지만 아무렴 나는 태평했다. 와 이거는 정말정말로 잊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하지도 않았고 걱정되지도 않았다. 폭스 호스텔 체크아웃과 프란츠 조셉으로 가는 인터시티 버스는 내일 아침이었고 그전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는 불명이었지만 버스는 다시 예약하면 그만이고, 호스텔 체크아웃 시간인 10시까지는 좀 걱정됐지만 아무렴 큰일이 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탭들은 뜨겁고 묽은 마일로를 타다줬고 물을 부으면 완성되는 전투식량 느낌의 캠핑음식을 건넸다. 내 건 비프 스트로가노프였는데 고기가 많아서 나름 좋았다. 옥수수에 버섯까지 들어갔네 생각하며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코코아도 한 잔 마셨고 식사도 했겠다, 배낭에 헬멧을 넣고 짐을 좀 정리해 베개 형태로 만들어 베고 누웠다. 고삼 점심시간에 쪽잠자던 게 생각났다. 의자 세 개를 붙여 눕거나 사물함 위에 올라가서 자곤 했었다. 몸을 공간에 맞게 구긴다음 잘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들려고 누워있는데 어떤 스탭이 내이름을 불렀다. 나와 같이 투어를 했던 두 명과 함께 다른 텐트로 옮겨갔다.

 

여기서 놀랐던 건 그 난민 캠프같은 텐트말고 정석의 캠핑 텐트가 이미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텐트 여러개가 지어져 있었다. 그 난민캠프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누워 혹시몰라 챙겼던 비상식량 초콜릿바 하나를 까먹고 잤다. 화장실도 갈 수 있었는데 작은 거는 빙하 위에서 해결했고 큰 거는 따로 지어진 간이 화장실에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더 더 놀랐던 건 스탭들은 하나같이 걱정이거나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간간이 스텝들끼리 웃고 떠드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자야 했고 빙하나 바위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glacier fall과 rock fall 소리가 쿠르르르 하면서 간간히 들려왔음에도 자장가 같았고,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서 다음 날 아침 헬기를 타고 지상에 내려가는 순간까지도 안전함을 느꼈다. 내가 태평한 점도 있지만 그보다도, 요컨대 가이드들은 정말 프로페셔널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헬기가 떴다. 오피스 근처에서 샤워도 할 수 있었지만 호스텔이 가까워서 그냥 호스텔에서 샤워하고 체크아웃까지 했다. 체크아웃 한 다음 오피스에 딸린 카페에서 아침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이것까지도 무료였다. 전날 투어 가이드가 와서 빙하 사진을 구경시켜줬다. 투어에 포함돼있는 티도 한 장 받았는데 이게 어디갔는지 지금 찾아도 도저히 안 보인다. 샤워도 하고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 하느라 인터시티 버스는 당연히 놓쳤다. 그래서 투어회사 직원 중 하나가 프란츠 조셉의 호스텔까지 데려다줬다. 한국을 참 좋아하는 남자애여서 드라이버로 선택됐다고 했다. 전라도 음식 맛있다는 얘기부터 나보고 김치 한 통 보내달라는 얘기까지 주제도 다양했다. 하지만 난 김치 별로 안 좋아하는 걸, 했더니 뭐? 설마 백김치도?? 이러는데 어이도 없고 웃겼다. 아니 백김치는 조금 먹어.

 

이러고 프란츠 조셉 호스텔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같은 방을 쓰는 남자애가 너 어제 안 들어와서 무슨일 있는 줄 알고 리셉션에 얘기했다고 했다. 니 말이 맞아. 나 무슨 일 있었지. 좀 엄청난 일이.

 

폭스 빙하에서의 캠핑을 마치고 며칠 후 테카포 호수에서 메일을 하나 받았다. 빙하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날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개선됐으면 하는 점과 사진들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는데 모든 게 좋았다는 장문의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날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을 먹이고 재우고 화장실가는 걸 도와주고, 또 그 많은 관광객들의 텐트까지 지어야 했음에도 직원들은 항상 웃고있었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건 아무리 돈을 많이 주는 직업이라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가이드들에게 프로의식이 없으면 안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