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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남섬

8시간의 밀포드 사운드

by 마리Mary 2019. 3. 29.

밀포드 사운드, 개인적으로 가려면 트랙넷 버스를 이용해야 하고 퀸즈타운에서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꽤 먼 곳이다. 밀포드 사운드란 이름에서 milford의 mil은 풍차, ford는 선착장이다. 그러니까 밀포드는 이곳에 풍차 오두막과 선착장이 있다는 뜻이고, sound는 바다에 의해 강이 넘쳐 육지로 파고들어 간 곳을 이야기한다. 어느 곳에 처음 방문한 웨스턴들이 붙인 이름들이 그렇듯 밀포드사운드 또한 사실과 다른데, 이곳은 사운드가 아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강에 의해 형성된 곳이 아니라 고대빙하에 의해 침식되며 생긴 피요르드이다. 이 멋진 피요르드를 보러 가는 길엔 버스의 오른쪽에 앉는 것이 좋다.

 

키위버스에서 퀸즈타운에서의 공식일정이 이틀인 건 퀸즈타운에 도착하고 이튿날 밀포드 사운드를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키위익스피리언스의 밀포드 사운드 투어인 milford explorer는 기본패스에 포함돼있지 않지만 프란츠 조셉이나 타우포에서처럼 많이들 하는 액티비티를 할 수 있게 하루의 엑스트라 일정이 있다. 

 

퀸즈타운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향하는 길은 정말 멀다. 얼마나 머냐면 모든 일정을 마치고 퀸즈타운으로 돌아오는 길엔 가파르고 험난한 산을 폭 덮은 흰 눈과 빙하가 만드는 거칠고 부드러운 밀포드 사운드의 풍경을 포기하고 단잠에 빠졌을 정도였다. 버스로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처음 잠에 빠졌던 날이었다. 일정도 일정대로 할 게 많고, 시간도 길어서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출발해서 6시 전에 돌아온다.

 

처음 들르는 곳은 테 아누아에 있는 작은 카페인데 여기서 모닝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거리를 미리 사둔다. 그다음 한참을 달려 eglington valley에 가는데 여기서는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배경으로 점프샷을 찍으면 발 아래에 산을 두고 찍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론 monkey creek에 들려 물병을 채운다. 통가리로 산에 타라나키 폭포에서 물병을 채웠을 때는 흙알갱이가 조금 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었다. 밀포드 사운드 투어의 가이드(이자 드라이버)는 지구상에서 마실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물 중 하나일 거라고 했다.

 

호머터널Homer tunnel을 지나기 전에 잠시 멈춰 사진을 찍는데 이때부터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밀포드 사운드에 가까워질수록 지형은 점점 험난해지는데, 밀포드 사운드에서는 1년에 300일이 넘게 비가 온다더니 어느 곳이든 눈이 쌓여있었다. 그 눈이 녹아 작은 폭포로 흐르고 그 주변엔 빙하들이 만들어져있었다.

 

이날 밀포드사운드 투어에서 운전을 맡은 드라이버는 키위 익스피리언스 일정 전체를 운전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아마 밀포드 사운드만 운전하는 사람같았다. 이 호머터널을 지날 때 eye of the tiger를 틀었다. 그 빰빰빰 하는 비트에 맞춰서 버스 안 조명을 껐다 키는데 웃기고 귀여웠다. 호머 터널을 지나서, 밀포드 사운드가 보일락말락하고 더 거대해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점점 더 가파르고 높아지는 협곡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드라이버는 또 쥬라기 월드 ost를 틀었다. 이런 게 키위버스가 갖는 매력중에 하나다. 뉴질랜드의 관광자원 뿐만 아니라 음악, 음식까지 경험 중 일부로 만들어주겠다는 의지가 있다.

 

여기까지가 밀포드 사운드로 오는 길이고,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밀포드 사운드를 구경할 수 있다. 이날 키위버스에서 탄 배는 쥬시(jucy) 배였는데 사람많고 작고 허접했다. 아마도 제일 싸겠지. 처음엔 패키지가 그럼 그렇지 생각했지만 중요한 건 내가 탄 배가 아니라 내가 보는 풍경이었기 때문에 투어 중에는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밀포드 사운드는 오가는 길이 길지만 그 동안의 풍광이 놓칠 게 없고 오히려 밀포드 사운드보다도 가는 길이 더 멋져서,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할 때부터 이미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밀포드사운드는 하루 숙박하는 걸 추천한다. 키위버스를 탔으면 밀포드 패스를 구입하지 말고 일정을 늘려서 버스와 숙박, 크루즈도 개인으로 예약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어차피 밀포드 사운드의 맑은 날씨를 기다리느라 며칠 여유를 두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크루즈 배는 전방주차를 하니까 배에 타서 바로 맨 위층으로 올라가 밀포드사운드가 안 보이는 쪽에 앉는 것이 명당을 잡은 것이다. 헷갈린다면 선장실을 미리 확인하고 맨 윗층에 올라가는 것도 방법이다. Bowen falls, Mitre Peak같은 걸 보면서 캡틴이 어떤 바위는 어떤 모양이고 어떤 폭포는 어떤 이유에서 어떻고 크기는 저쩧고 얘기를 한다. 이곳에서는 1년 내내 물개가 살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물개도 볼 수 있다. 나는 맑은 날 가서 물개들이 늘어져있는 것도 많이 봤으니 어지간히 운이 좋았었나보다.

 

이만한 높이의 폭포는 밀포드 사운드에 널렸지만 사진의 스털링 폭포stirling falls가 특별한 이유는 저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보다 더 다가가서 갑판이 완전히 물바다가 된다. 웬만하면 찍었을 텐데 카메라 고장나는 거 아닌가 싶은 정도의 물줄기여서 찍지는 않았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카약은 타고싶은 생각이 한번도 들지 않았는데 이 폭포를 카야킹하는 사람들은 정말 부러웠다.

 

내가 원할 때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음을 내면서 느끼는 주변의 쟤 사진찍는다 하는 시선에 의한 쪽팔림은 혼자 여행하면서 아무 문제도 아니게 됐다. 뉴질랜드에서 꼭 찍고 싶은 사진은 빨간꽃이 열리는 나무와 이 노란 꽃이었다. 빨간 나무는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키위버스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나 혼자 엄청난 셔터소리를 내며 찍고 득템에 성공했었다. 이 노란 꽃은 버스로 뉴질랜드를 여행하면 지천에 깔린 꽃이지만 항상 말하듯 키위버스는 정말 빨리 달리기 때문에 원하는 사진을 예쁘게 찍기란 쉽지 않다.

 

봄에 피는 이 꽃의 이름은 코파이kowhai로 마오리족들은 염색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국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뉴질랜드에는 국화가 없고, 이 꽃은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꽃이라고 한다. 근데 공식적으로 국조가 없어서 키위새도 아무것도 아닌 새인데 그렇게도 팔아먹는 걸 보면 이 꽃도 사실상은 국화인 것 같다.

 

폭포에서 세수 한 번 하고나서는 갑자기 피곤해져서, 산을 배경으로 저 꽃의 사진을 오늘만은 꼭 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나있다가, 하늘이 흐려 별로였던 미러호수를 산책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는 그렇게 화창해서 따갑기까지 하더니 뭐이렇게 금방 새까맣게 흐려져서 천둥칠 것처럼 굴지 생각하면서. 근데 또 퀸즈타운에서는 다시 맑아져있었다. 이런 날씨변화는 뉴질랜드에서도 왜 날씨가 이모양일까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날씨가 거지같이 변덕스러우면 뉴질랜드 생각이 나면서 짜증이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