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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남섬

마지막 뉴질랜드 - 크라이스트처치, 카이코우라

by 마리Mary 2019. 4. 24.

 

레이크 테카포에서 크라이스트처치로 가는 길은 멀어서 키위익스피리언스 버스로 5시간정도가 걸린다. 중간에 geraldine이라는 동네에 들려 점심을 먹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긴 시간이다. 9시에 출발해서 도착은 2시에 한다.

 

크라이스트처치라는 작은 동네가 내세울만한 건 뉴브라이튼 도서관과 아름다운 정원들 정도다. 도시 미관을 위해 정원 콘테스트를 여는데 이게 보통 외국동네 하면 생각나는 그런 작은 정원이 딸린 게 아니라 장미를 몇십종류 씩 심고 스케일이 엄청난 콘테스트다. 우승자가 되면 정원을 개방해서 구경을 할 수 있다.

 

 

뉴 브라이튼 도서관은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이다. 그래서 바닷가 쪽 창은 전면 유리다. 빈백에 눕듯이 앉아 책을 읽다가 바다를 볼 수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는데 바닷가 산책로와 연결이 돼있다.  바닷가 산책로는 길이가 좀 되는데 낚시를 할 수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키위버스의 픽업포인트는 ymca인데 여기서 바다 앞에 있는 뉴 브라이튼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한다. 60번 버스를 타면 되고 편도 티켓에 현금으로 4달러다. 시간은 1시간 이하로 소요된다. 이 편도 티켓이 여느 호주 및 뉴질랜드 교통값과 같이 비싼데다가 이 티켓으로 환승할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도서관에서는 1시간동안 바닷길만 구경하고 나와야 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몇년 전 대지진으로 복구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는데 최근 총격사고까지, 조용하고 작은 동네 치고는 어쩐지 다사다난하다. 특히 이번 총격사고가 일어난 모스코사진을 기사로 봤는데, 알고보니 뉴브라이튼 도서관에 갈 때 버스로 지나치면서 이런 데에도 모스코가 있네 하며 사진까지 찍었던 모스코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대지진 때 크라이스트처치의 대성당이 무너져서 간이로 만든 성당이 이 종이성당이다. 갔을 때에는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들이 전시돼있었다. 

 

이 종이성당에서 조금만 위로 걸으면 바로 대성당이 있는 cathedral square가 나온다. 이 성당 광장에는 거꾸로 꽂힌 원뿔형 조형물인 Chalice the sculpture가 있지만 서울 롯데월드타워의 사우론이나 강남스타일 손목 동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없느니만 못한 조형물이다.

 

 

원래는 이렇게 생겼었다고 한다. 높은 첨탑은 지금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재건중인 대성당은 완전히 새들의 아지트가 돼있었다. 그런데 호주하고 뉴질랜드에서 하도 성당을 많이 보다보니까 이렇게 박살이 난 게 또 새롭고 멋있어 보였다. 세기말 분위기에 한몫하고있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찍은 사진이 두번째 사진인데 저렇게 무너져내린 게 첨탑이 있던 자리같았다. 그렇게 높았던 게 밑둥만 남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 성당광장에서 더 위로 걸어가면 뉴 리젠트 거리new regent street가 나오는데 크라이스트처치의 커피거리다. 빈티지스러운 상점과 세련되고 포근한 카페들이 많다. 그 다음 공원 안의 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그리워했다고 이름이 붙은 bridge of rememberance가 있고 이 다리 아래로 시끌벅적한 카페, 술집들이 많다.

 

저녁을 먹고 해가 더 지기 전에 ymca옆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 보타닉 가든에 갔는데 분수대가 멋있었고 구석에 있는 장미정원도 나쁘지 않았다. 장미정원의 입구에는 큰 장미 모형이 세워져있는데, 웰링턴의 장미정원이 훨씬 꽃이 크고 많이 피어있었지만 투톤으로 만든 장미같이 색이 특이하고 다양한 게 볼거리였다.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그랬는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카이코우라로 가는 날에는 늦잠자서 키위버스를 놓쳤다. 그래서 바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카이코우라로 가는 인터시티 버스를 찾아봤는데 오전에 한 개, 오후에 한 개 있다고 해서 오후 버스를 예약했다. 오후에 픽업포인트라고 나와있는 곳에 가보니 인터시티 간판이 달려있고 역시나 여행객들이 멍하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피스에 들어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가방에 메놓는 태그를 받았다. 짐을 실을 땐 픽톤까지 가는 사람들 짐을 먼저 넣고 카이코우라 가는 사람들 건 나중에 실었다.

 

카이코우라는 해안가 도시로 야생동물이 풍부해서 카이코우라로 가는 날, 카이코우라에서 떠나는 날 버스 왼쪽에 앉으면 바위 위에 누워있는 새끼물개들을 볼 수 있다. 위 사진과 아래 사진에서도 잘 찾아보면 새끼물개들이 있다.

 

물개 외에 고래도 많고 돌고래도 많아서 돌고래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키위 익스피리언스 어플에는 나와있는데 나는 어차피 버스도 놓쳤는데다가 날도 흐려서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오후에 출발한 인터시티는 오후 늦게 도착해서 가고싶던 맛집은 전부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저녁으로 coopers catch라는 피쉬앤칩스 집에 가서 피쉬앤칩스를 먹었는데 뉴질랜드에서 먹은 피쉬앤칩스 중에 가장 기본적인 맛이었다.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포크로 찍어도 형태가 흩어지지 않을만큼 두꺼운 감자튀김, 두툼한 생선튀김 두 조각에 레몬 엣지 두 조각이 담겨있고 코울슬로에 에이올리 소스까지 있는 세트메뉴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커트러리는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인데 따로 서빙해주지 않고 셀프로 집어와야 한다. 야외테이블도 있는데 안그래도 바닷가의 피쉬앤칩스 집이다보니 갈매기들이 너무나 공격적이어서 안에서 안전히 식사했다. 식탁에는 케쳡이 올라가 있었지만 피쉬앤칩스에는 소금과 식초/레몬즙 많이다. 종종 피쉬앤칩스 집에 가면 실망하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식탁에 소금통과 식초통이 없는 것.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서 정말 간만이 식초까지 충분히 뿌려먹었다.

 

호주하고 뉴질랜드에서의 몇 안 되는 외식 중에 가장 많이 시켜먹은 게 피쉬앤칩스다. 비싼것도 싼것도 먹어봤지만 피쉬앤칩스라는 건 별로 비쌀 이유가 없다. 좋은 감자와 생선을 좋은 튀김옷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 다음 소금을 '많이' 뿌리고 레몬을 엣지로 잘라 서빙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피쉬앤칩스는 바닷가 근처의 저렴한 곳이 가장 맛있다.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뉴질랜드 카이코우라에서 먹었던 저렴한 피쉬앤칩스가 두 나라를 여행하며 먹었던 피쉬앤칩스 중에 최고였다. 물론 두 가게 모두 가게에 소금통과 식초통이 놓여져있다.

 

 

카이코우라에서의 키위버스 숙소는 lazy shag이라는 곳이었는데 미리 예약을 했었다. 근데 카이코우라 시내에 있는 게 아니고 멀리 다리와 큰 도로를 건너야 했다. 힘들게 올라갔더니 키위익스피리언스 숙소라기엔 너무 한적하고 사람도 없었지만 다른 방을 써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까지도 사람들이 별로 없고 다섯 명도 안 되는 여행객들이 짐을 메고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저사람들은 무조건 키위버스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따라갔더니 레이지 색보다 더 떨어져있는 숙소 앞에 키위버스가 서있었고 키위버스 사람들도 더 많았다. 하필 내가 놓친 날 이따위로 굴다니.

 

그다음 명단을 확인하는데 드라이버가 내 이름이 없다는 거다. 그럴리가 없다고 했는데 나보고 어제 버스 놓쳤지? 하고 물어보길래 응, 근데 내 일정은 안 바꿨는데? 했다. 이날은 카이코우라에서 픽톤을 거쳐 페리를 타고 웰링턴에 가는 날이기 때문에 페리값 55달러 현찰지불하고 픽톤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키위버스 오피스에 확인해보니 키위 익스피리언스의 시스템이란 이런 거였다. 내가 만약 12월 1일에 버스를 놓친다면 그 이후의 일정은 모두 제로세팅이 된다. 즉, 12월 1일에 프란츠 조셉에서 일정의 변화가 생겼으면 그 이후 와나카에서 5일간 머무른다고 이미 수정했던 일정이 사라지고 1박만 하는 일정으로 바뀐다. 나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버스를 놓쳤기 때문에, 이후 일정인 북섬에서의 웰링턴, 타우포 등등에서 미리 메일을 보내 정해놨던 일정만 없어진 게 아니라 unbooked, 즉 언제 버스를 탄다고 하는 날짜까지 전부 사라진 거였다. 그래서 카이코우라에서 픽톤을 거쳐 웰링턴에 가는 버스의 명단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근데 이렇게 될거면 적어도 키위버스에서 너 오늘 버스를 놓쳐서 일정이 리셋됐다는 이메일쯤은 해야 할건데 그런 것도 없었다.

 

관광버스가 빡치는 점은 이런 거였다. 여행 도중 계획이 틀어졌을 때 내가 하려는 방식과 관광버스 회사가 운영하던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불통이 관광버스의 최대 맹점인 것이었다. 단순히 사람들 많고 부대껴야 하고 자유여행보다 재미가 없으며 모든 시간이 자유시간인 개인여행에 비해 자유시간은 주어져야만 존재하게 되는 그런 것만 단점이 아니었다.

 

이후 픽톤에 도착하면 짐을 내리고 버스기사가 페리 티켓을 들고올 때를 기다린다. 티켓을 받고 시간을 대충 때우다보면 웰링턴에서 페리를 타고 키위버스 여행자들이 도착한다. 그럼 그들은 카이코우라에서 픽톤까지 내가 타고왔던 그 버스를 타고 남섬을 여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들이 리버밸리에서 타우포까지 탔던 그 버스를 타고 웰링턴 숙소 앞에 내려질 것이다.

 

남섬 여행을 끝내고 다시 북섬에 도착해서는 웰링턴을 돌아다니고 첫 타우포 방문시에 미뤄뒀던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마쳤다. 이후 오클랜드에 돌아가 폰슨비에서 커피를 한 잔 했다. 곧 뉴질랜드 여행이 끝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