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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북섬

북섬의 끝에서 - 뉴질랜드 웰링턴

by 마리Mary 2019. 2. 20.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여행할 때는 간편했던 게, 커먼웰스 은행에서 트래블 머니 카드를 신청해서 신용카드로 이용할 수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카드를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뉴질랜드 여행을 가기 전에는 현금을 더 많이 쓸거라고 생각했는데 카드결제를 거절당한 적은 버스타다 잠깐 쉬어가는 촌구석 카페가 아니고서야 기억에 없다.

 

다만 키위 익스피리언스로 여행을 하다보면 현금이 필요할 때가 생기는데, 그건 키위버스 협찬의 숙소값과 저녁값, 또는 북섬 웰링턴에서 남섬으로 가는 페리 값을 지불해야 할 때이다. 페리 값은 55뉴질랜드달러인데 키위익스피리언스 가격이 아니면 이것보다 조금 더 비싸다. 이때쯤의 나는 뉴질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빙하 투어에 대한 생각으로 들떠있고 프란츠 조셉과 폭스 빙하 지역의 날씨 걱정에 절여져있었다. 그래서 우선 빙하부터 끝내고 보자는 생각으로 북섬에서 남섬으로 넘어갈 때에는 웰링턴에서 더 머무르지 않았다. 남섬관광을 모두 끝내고 남섬에서 북섬으로 돌아오며 웰링턴에 도착했을 때 통가리로 크로싱만을 남겨두고 웰링턴 관광을 시작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모든 것이 비싸다보니 배고프게 여행할 수 밖에 없었는데 호주에서도 배불리 먹은 적은 별로 없지만 뉴질랜드에서는 하루 두끼 먹으면 잘 먹은 거였다. 호스텔 요리란 생각보다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런데 버스여행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그 호스텔 주방에 적응할 시간도 없다. 따라서 내 도시락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호스텔 주방에 오래 머물지 않을 수 있으며, 버스 안에서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호스텔 주방에 오래 있지 않으려면 불을 쓰지 않는 요리를 하면 된다. 파스타도 불을 쓰지만 오래 있지 않을 수 있어서 나쁘지는 않지만 버스 안에서 먹기 난감해서 탈락했다. 결론은 샌드위치였다. 제일 싼 홀그레인 아니면 멀티그레인 식빵 한 덩어리, 한국에선 비싸서 못 사먹는 콜드컷 햄들 아니면 살라미, 슬라이스 치즈에 양상추 한 통과 마요네즈 한 통이면 식재료는 끝이고 조리도구도 두 손, 접시 두개, 랩이면 된다. 며칠마다 한번씩 샌드위치 몇개 싸놓는 게 일이었으니 저절로 숙달돼갔고 샌드위치 6개 싸는데 30분이면 설거지까지 끝났다. 손질한 재료(라고는 양상추 씻어서 찢어놓기 밖에 없다.)를 접시1에 놓아둔다. 접시2에 랩을 넓게 한 장 깔고 식빵-마요네즈-햄-양상추-치즈 올린다음 빵 덮으면 끝이다. 너무 부실한거 같으면 두껍고 좋은 베이컨 햄같은 걸 쓰거나 아보카도를 올린다. 단, 아보카도를 올릴 땐 뭉개져도 불편하지 않게 치즈나 햄 같은 평평한 재료들 사이에 놓는 게 좋다. 좀 사치스럽고 싶으면 치즈를 두 종류 쓴다. 가끔 마요네즈 말고 후무스같은 걸 쓰면 좋다. 버터도 있으면 좋은데, 계란만은 안된다. 호스텔엔 계란 후라이를 멀쩡하게 할 수 있는 후라이팬이 정말 생각보다 없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를 단단하게 싸는 건 간단한데, 샌드위치를 랩으로 싸는 것도 하나의 요리과정으로 여기고 꾹꾹 눌러가며 꼼꼼하게만 하면 된다. 왼쪽 오른쪽 사이드를 접은 다음 위아래를 접는다. 그리고 포인트는 이 완성된 샌드위치를 접시2 아래에 놓고, 두번째 샌드위치를 싸면서 자연스럽게 압력을 주면 단단해진다. 그리고 나는 이제 식빵과 샴페인 햄은 쳐다보기도 싫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돈주고 사먹은 식사는 항상 특별했고 항상 기억에 남았다. 한입 먹을 때마다 맛을 충분히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사진의 프리터스fritters는 웰링턴에서 로컬들이 가는 빵집이라고 어디선가 주워듣고 간 Pandoro Panetteria Ltd 에서 시킨건데 웨스턴이 스코틀랜드에서 왔는지 뉴질랜드 로컬인지 알 수 없는 나로서도 그 가게 안에서 관광객은 나 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프리터는 야채전같아서 잘 안 시키는데 이때는 그런 느낌의 음식이 먹고싶었던 것 같다. 커피는 그닥이었지만 음식은 좋았다. 반죽이 노랗고 전체적으로 달콤한 건 고구마 때문인 것 같았고, 시금치하고 당근, 양파가 들어갔었다. 양파는 투명한 정도로만 익었고 속은 곤죽 식감이었다. 근데 엄청난 감칠맛이 있었다. 조미료를 넣은건지 간이 완벽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위에는 훈제연어 두 조각에 수란, 홀란데이즈 소스는 계란 위에 올려놓고도 따로 병에 담아주는 게 너무 좋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홀란데이즈 소스는 먹을 때마다 부족하다고 느낀다. 레몬이 꽂혀진 건 고구마 무스였고 샐러드는 양파, 시금치, 토마토, 파프리카였다. 파프리카가 엄청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관광객이 별로 없다는 점도 합해서 맛집이라면 맛집인 것 같았다.

 

 

테파파 박물관에도 갔었는데 생각보다 볼 건 없었다. 잘 해놓기는 깔끔하게 잘 해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박물관에는 점점 흥미가 떨어진다. 테파파 박물관을 나와 빅토리아 전망대에 갔었다. 예전같았으면 걸어서 올라갔을 수도 있었는데 남섬에서 빙하투어를 하면서 손목하고 발목이 안 좋아졌었고, 이때는 아직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여기서 손발목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인건 웰링턴에서는 버스 데이패스가 10달러라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운트 빅토리아는 날이 흐려서 생각보다 별로였고 케이블카 운행이 종료되기 전에 타려고 서둘러 케이블카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은 약간 후미진 곳에 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아주 가깝게 있는 작고 높은 케이블카 표지판을 찾으면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다음 내려서 꽤 걷다보면 장미정원이 나온다. 남섬에 있을 때 크라이스트처치에서도 장미정원에 갔었는데 두 개 다 넓고 꽃 크고 비등비등했던 것 같다. 

 

 

웰링턴에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다면 그건 벌집모양의 국회의사당일 것이다. 키위 익스피리언스는 도시에 도착하면 빨리 숙소에서 멈추지 않고 도시를 돌면서 이것저것 짧게 설명해주는데, 이날 드라이버는 이 비하이브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정부 건물일 거라고 했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다. 너무 못생겨서 약간은 위협적이기도 하다. 

 

 

오클랜드는 언덕이 많아서 hilly auckland, hilly city라고 부르기도 한다. 웰링턴은 바람이 많아서 windy wellington이라고 많이 말한다. 북섬에서 남섬으로 넘어가며 들린 웰링턴에서는 날씨가 정말 맑고 바람도 적어서 그때 드라이버가 웰링턴에서는 흔하지 않게 아주 좋은 날씨라고 했었다. 남섬에서 북섬으로 가며 들린 웰링턴에서는 윈디 웰링턴을 제대로 경험했다. 낮에는 그런대로 잘 돌아다녔는데 해가 지기 시작하니까 바람이 너무 거세서 한발짝은 떠밀려갔던 정도였다. 어디서 간판에 떨어져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바람이었다. 원래 계획은 칵테일 한 잔 하는 거였지만 빠르게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웰링턴에서는 호스텔에서 만난 스페인계 이민자 2세인 미국인에게 와인 두잔을 얻어마시고 남섬 페리정류장에서 다시 만나는 멋진 일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날의 바람이 웰링턴의 평소같은 바람이라면 난 절대 웰링턴에서는 못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