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딥 사우스 패스는 퀸즈타운에서 더니든으로의 하루, 더니든에서 인버카길에서의 하루, 인버카길에서 퀸즈타운까지를 여행하는 패스다. 퀸즈타운에서 원래는 아침 일찍 출발을 하는 거였다. 퍼그버거를 오프닝 시간에 맞춰 가서 아침으로 먹고 한참을 기다려도 키위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11시 15분쯤 되자 공항셔틀같이 뒤에 컨테이너를 연결한 작은 밴이 나타났다. 처음엔 키위익스피리언스가 아닌 줄 알았었다. 명단을 확인하고 밴에 올라탔다. 운전을 하며 드라이버가 말해주길 자기는 정식 키위버스 드라이버는 아니라고 했다. 말하자면 견습인 것이다. 옆에 사수정도로 보이는 드라이버가 함께 타서 일정을 같이한다. 그 견습 드라이버는 미니밴을 운행하며 경험을 쌓고 그 이후에 키위익스피리언스 버스처럼 큰 버스를 몬다.
그 드라이버가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했기 때문에 차에 타서 짐만 내리고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아서 레이크프론트에 앉아 맥주 한 캔 마시고 다시 올라탔다. 그러고 한시간 반을 달렸을까, 오타고의 Clyde라는 곳의 댐 주변 뷰포인트에서 잠시 쉬었다. 그 이후 세 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의 에든버러(스코틀랜드의 수도), 스코틀랜드와 마오리족의 역사가 깊으며, 중국인들이 많고, 오타고 대학교로 대표되는 학생도 정말 많은 더니든이었다. 더니든은 오타고 지방의 중심 도시이고, 시내 중심엔 옥타곤이라는 팔각형 광장이 있다.
비가 내리다 잦아들어 빗방울만 조금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다 잠깐 내렸는데 졸다가 뭐하는 곳인지 못 듣고 내려서 엄청난 산책을 해야 했다. 사진 속 카페 이름이 steep cafe인 이유는 더니든에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거리인 볼드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경사가 35도, 아래는 30미터 꼭대기는 100미터인 이 거리는 지형에 대한 생각없이 그리드로 지역을 나누다보니 이런 꼴이 됐다고 한다. 이 거리의 끝에 다다르면 언덕에 대한 설명과 언덕을 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는데 누구는 콩콩을 타고 올랐다 하고 누구는 스케이트보드로 올라왔댄다. 이곳에 가서 지형을 살린 사진을 찍는 건 주변의 집을 활용하면 된다. 사진 수평을 집에 맞추지 말고 도로에 맞추면 안믿기게 기울어진 집을 찍을 수 있다.
더니든에 가기 전에는 저기도 가고싶고 여기도 가보고싶고 그랬는데 막상 더니든에 도착하니 5시였고 또 더니든 출신인 드라이버가 마을을 소개해주면서 차로 1시간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숙소에 체크인하고서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었다. 시간도 없고, 비도 오고 해서 오타고 대학 안이나 도심 근처에 있는 정원은 생략하고 오타고의 첫 교회라는 곳, 기차역, 시청같은 건물들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직선적이고 구조적이면서 감성적이지가 않고 추적추적 비오는 우중충한 하늘과 어울리는 바로크 건물이었다. 특히 아래사진의 더니든 기차역은 스코틀랜드 풍의 건축물로 유명하다.
기차역의 내부또한 볼만한데 마요르카 타일,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져있다. 오타고 박물관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늦게 도착해서 운영시간이 끝나있었다.
그리고 더니든엔 중국인이 정말 많았다. 거주하는 중국인도 여행온 중국인도 많았다. 다음날 드라이버에게 더니든에 왜 그렇게 중국인이 많은건지 물어봤는데 골드러쉬 때 금을 찾아 떠난 중국인들이 정착했을 거라고 했다. 추측컨대 떠나기엔 너무 좋은 곳이었나보다. 발로 돌아다니기엔 살짝 넓고 주변에 정원도 멋진 건축물도 많은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기차역과 (지나칠 정도로) 잘 정돈된 화단이 참 잘 어울렸다.
저녁식사로 여러가지 찾아보다가 오타고대학 근처에 있는 the flying squid라는 피쉬앤칩스 가게가 맛있다기에 갔는데 레몬소금을 빼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맛이었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흔히 말하는 가성비라는 걸 찾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분명 누군가가 해당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가성비 제품, 음식, 서비스를 찾기가 매우 쉬운데 여기서는 싸면 싼 이유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제품에 있다. 뭔가가 빠진 곳이 있던지, 더럽던지 하는 이유로.
이 집에서 피쉬앤칩스를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팁탑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는데 두 가게 전부 다 크레딧카드를 받지 않았다. 호주에서 커먼웰스에 트래블머니 카드를 신청해서 쓰면 형식은 체크카드지만 외국에서 크레딧카드로 취급된다. 오클랜드에서부터 더니든에 올 때 까지는 크레딧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더니든 숙소는 미리 예약하고 사이트에서 돈을 내서 몰랐는데 놀랍게도 크레딧 카드가 안됐고 카드만 들고 나왔어서 할수없이 ATM기에서 현금을 뽑아야 했다. 인버카길에서 머물렀던 숙소에서는 저녁값을 포함한 숙소비를 냈는데 다행히도 카드결제가 됐다.
자고 일어나 더니든에서 인버카길로 향하는 날은 들를 곳이 참 많다. 근데 날씨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가장 먼저 너겟 포인트에 들르는데 이곳은 바다에 바위들이 조각조각 흩어져있는 게 꼭 너겟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길 끝의 등대까지 갈 수 있는데 사진을 보다시피 빗방울에 바람에 참 추웠다.
그래도 미니밴은 두 곳의 폭포와 한 곳의 뷰포인트로 향했다. Purakaunui Falls, Florence Hill Lookout, McLean Falls 세 곳을 들렸다. 플로렌스 힐 전망대는 넓은 해안가를 잔디밭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푸라카우누이 폭포는 넓은 3단 폭포였고 맥린 폭포는 물이 높은 곳에서 좁게 떨어지다가 바로 넓어지는 2단 폭포였다. 뉴질랜드에서 눈뜬 게 있다면 폭포와 산의 아름다움이다. 뉴질랜드는 물론 바다도 예쁘지만 키위버스를 탔기에 만났던 구석구석 곳곳의 작고 때때로는 큰 폭포들은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할 땐 생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같은 날이란 게 안믿기게 화창한 이곳은 점심식사를 한 curio bay에서 가까운 waipapa point다. 큐리오 베이에서도 식당 주변에 산책코스가 있는데 그냥 식사를 느긋하게 했다. 와이파파 포인트에는 등대가 있고 해안가를 따라 걸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해안가를 걸으면 바다사자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엄청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동식물들을 보다보면 보호색이란 놀라운 것에 대해 감탄이 나올 때가 많다. 바위같아 보이는 사진 가운데 앞쪽에 털뭉치가 바다사자다.
입이 찢어지도록 쩍 벌리면서 하품하는 것도 봤는데 너무 놀라서 사진은 못 찍었다. 혹시 또 하품을 하며 입 안 구경을 시켜줄까봐서 계속 기다렸지만 바다사자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지 않았다. 비가 그친 후 쨍쨍한 태양 아래서 모래찜질을 하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구는 바다사자는 정말 평화로워보였다. 바다사자에게 너무 가까이 가면 쫓아온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자기 혼자 편히 일광욕하느라 인간을 쫓아올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너겟 포인트가 얼마나 너겟같을까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제와서 맑아진 게 아쉬웠지만 바다사자로 인해서 모두 잊혀졌다.
중간에 뉴질랜드의 최남단에 있는 섬인 스튜어트 아일랜드로 갈 사람들을 위해 선착장에 내려주고, 뉴질랜드 최북단인 케이프 레잉가와 쌍을 이루는 이곳, 뉴질랜드의 최남단인 블러프에 들른다. 키위익스피리언스의 딥사우스 패스는 더니든과 인버카길을 방문하는 일정이지만 사실상 남섬의 남쪽을 둘러둘러 돌아보는 것에 가깝다. 인버카길은 차에 앉은 채로 구경만 잠깐 하고 바로 숙소로 향한다. 2시가 넘은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숙소도 인버카길에서 조금 떨어진 비치로드 홀리데이 파크라는 곳이다. 숙소에서도 짐만 풀고 잠깐 쉬다가 근처 oreti beach로 차를 타고 산책에 나간다.
숙소에 체크인할 때 숙박비에 저녁값도 같이 낸다. 샐러드하고 파스타같은 걸 만들어놓고 냉장고에 넣어둔 다음 키위익스피리언스 애들 거라고 써붙여놓는다. 키위버스로 여행하다보면 간간히 마주치는 스타일의 저녁이다. 간만에 먹는 남이 만든 파스타는 왜 그렇게도 맛있는지 다른 애들 오기 전에 한번 하고 다른 애들 먹을 때 또 먹었다. 그정도로 분명 맛있었는데 사진이나 메모가 하나도 안 남아있다. 숙소는 와이파이 코드를 입력하면 하루간 이용이 가능했는데 있으나마나한 정도까지는 아닌, 평균적인 뉴질랜드 외곽지역의 숙소 와이파이 수준이었다. 동영상을 보기는 힘들지만 아이메세지 정도는 보낼 수 있다.
키위익스피리언스 패스 중에 딥 사우스 패스와 밀포드 익스플로러 패스를 둘다 갖고 있다면 딥 사우스 패스가 끝나는 날에 퀸즈타운까지 돌아가지 않고 바로 밀포드 투어를 하게 된다. 즉 퀸즈타운에서 더니든으로 하루, 더니든에서 인버카길로 하루, 인버카길에서 돌아가는 날 아침에 미니밴에서 키위버스로 환승을 한 후 밀포드 사운드 투어를 마치고서야 퀸즈타운에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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