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타운에서는 다섯밤을 예약했다. 키위 익스피리언스로 버스여행을 하던 일정 중에서는 꽤 긴 일정이었다. 많은 여행자들은 오클랜드에서 퀸즈타운까지의 패스를 사거나 오클랜드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의 패스를 산다. 퀸즈타운에서는 기본 일정보다 길게 머무니까 이틀만 머무는 드라이버와도 안녕이다. 퀸즈타운으로 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과 헤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와나카에서 퀸즈타운으로 가는 버스는 왼쪽에 앉는 게 진짜다. 퀸즈타운으로 들어가는 길 왼쪽이 설산을 배경으로 호수가 넓게 펼쳐져있기 때문이다. 날도 맑아져서 호수엔 하늘이 비치고 와나카를 나오면서부터 퀸즈타운까지 펼쳐져있는 설산은 산맥이 삐죽하게 솟아나 있지 않고 편평하고 부드럽다. 그렇게나 예쁘다는 퀸즈타운으로 가기 전 아이언 산Mt. Iron을 두 시간 좀 안 되게 산책한다. 산책이 아니라 산행에 가까운데 폭스 빙하에서 다친 발목 때문에 발목 높은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중간에 내려와야 했다. 그랬는데도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이런 산행에도 와나카 호수는 아름다웠다.
중간에 크롬웰 과일가게에 들린다. 과일가게지만 말린 과일이나 호키포키도 판다. 사과하고 말린 무화과, 초콜릿으로 덮은 호키포키를 샀다. 사과는 퍽퍽했고 호키포키는 수분뺀 달고나 맛이었다. 말린 무화과는 반가워서 샀다. 예전에 한국 어딘가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도로변에서 말린 무화과라는 걸 판다고 해서 잠깐 들렸다. 그때는 내가 한참 무화과는 무슨 과일이야 무슨 맛이야 물어봤던 때여서 사기로 했던 것 같다. 그 말린 무화과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했을까, 엄청나게 작았는데 너무 맛있어서 하루에 몇 알 씩 아껴먹었었다. 그 무화과가 생각나서 샀는데 그 작은 말린 무화과보다 한 네 배는 컸다. 사과하고 호키포키는 실패했지만 무화과는 똑같이 무화과 맛이었다.
크롬웰 가게에 들리고 퀸즈타운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번지점프하는 곳에 들려 번지점프 하는 걸 구경한다. 키위버스에서 신청자가 다 뛰어야 버스가 출발한다. 만약 번지점프를 하고 싶은데 와나카에서 며칠 머물러서 액티비티 신청을 못했으면 아침에 빨리 드라이버에게 하고 싶다고 말해야한다.
그렇게나 유명하고, 뉴욕타임즈에 나왔다는, 세상에서 최고, 적어도 뉴질랜드에서 최고라는 퍼그버거에 갔다. 호주에서 피시앤칩스를 많이 먹었다면 뉴질랜드에서도 피쉬앤칩스에 열낼 필요는 없다. 물론 뉴질랜드 웨스턴 전통음식은 피쉬앤칩스지만, 그것보단 사슴고기를 먹어보는 게 좋다. 옛날에는 뉴질랜드에 사슴 개체수가 너무 많아서 줄이려고 식용을 했는데 지금은 따로 식용사슴이 있다. 또 초록홍합도 유명한데 초록홍합은 마트에서 사다 요리해먹었다.
사슴고기는 요리하기 귀찮아서 사먹기로 하고 퍼그버거에서 사슴버거를 시킨 거였다. 사슴버거는 이름이 잔인하게도 스윗밤비다. 근데 메뉴판을 연구해보니까 생각보다 맘에 드는 조합이 없었다. 나는 햄버거에 촉촉한 토마토 넣는 걸 좋아하지만 케쳡같은 건 안 좋아한다. 감자튀김에도 케첩은 안 먹는다. 근데 메뉴에는 토마토 렐리쉬(토마토 소스같은거)가 들어가 있는 게 많았다. 계란에 아보카도, 비트루트 들어간 뉴질랜드(및 호주)식 버거도 먹고싶었는데 내맘에 딱맞는 버거조합이 별로 없었다. 그게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사슴버거는 조합이 좋은 편이었다. 소스는 에이올리고 보이슨베리에 양파 캬라멜라이즈한 거, 슬라이스한 토마토에 브리치즈까지.
퍼그버거가 맛있는 건 빵이 한몫한다. 바삭하고 쫀득하면서도 질기지 않다. 사슴버거는 다 먹고나서도 신기했는데 햄버거를 다 먹고 나면 입에 남는 뭔가 찐득찐득한 느낌이 없었다. 이게 너무 맘에 들어서 다음날에 또 가서 tropical swine을 시켰는데 베이컨이 엄청나게 맛있었지만 다 먹고 찐득한 그 느낌이 났다.
햄버거엔 콜라가 아니라 밀크셰이크다. 퍼그버거에는 바로 옆에 젤라또 가게가 있고, 퍼그버거에서 밀크셰이크를 같이 주문할 수 있다. 주문하면 옆 퍼그젤라또가게에서 따로 만들어와서 손님을 찾아다닌다. 밀크셰이크는 바닐라하고 초콜릿을 먹었었는데 묽지 않고 맛있었다. 아쉬웠던 건 빨대가 좀 얇았다.
원래 아무리 맛집이어도 줄서야 하면 안 먹는다. 숙소에서 멀면 안 간다. 퍼그버거는 숙소에서 가까워서 갈 만 했다. nomad 뒤편 거리에 있다. 애초에 퀸즈타운이 정말 작은 시골도시이기도하다. 그래도 가게는 작고 손님은 많기 때문에 줄 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은 아침 10시, 다른 한 번은 아침 8시에 가서 두 번 다 15분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맛집을 가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기 싫다면 좀 일찍 가거나 늦게 가는 게 상식이다.
퀸즈타운에서는 호숫가에서 패러세일링을 하거나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다. 곤돌라 근처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퀸즈타운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루지를 타거나, 여기 뷔페에서 식사를 해도 좋다. 근데 손발목이 아프면 할 게 별로 없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뷔페식사를 했다. 2시간인가 시간제한이 있었다. 음식은 약간 맛있는 뷔페음식 정도였다. 디저트 섹션에서 파블로바를 많이 먹자.
퀸즈타운은 위에서 보면 호숫가가 납작하게 들어가있고 그 건너엔 퀸즈타운 공원이 둥글게 빠져나와 있고 또 다시 만처럼 쑥 들어가다가 뒤로 다시 골프치는 곳이 둥글게 빠져나와있다. 완만하게 튀어나와있는 땅들은 공원에 골프장이라 나무가 많고 잔디가 넓게 퍼져있어서 초록색인데, 맑은 날의 호수는 새파란데다 바로 뒤엔 흰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길고 긴 곡선을 가진 퀸즈타운은 정말 예쁜 도시다. 뉴질랜드 여행의 핵심인 남섬 중에서도 그 중심이 있다면 그건 퀸즈타운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가까이서 봐도 예쁘다. 칵테일이나 맥주 후에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는 호수와 설산은 낮이든 밤이든 좋았다.
특히 예쁜 건 호숫가에서 왼쪽으로 걸으면 나오는 공원인데 사람도 적고 손만한 장미꽃도 있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공원의 뒷쪽에서 보는 호수와 설산은 호숫가인 레이크프론트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또 다른 느낌이다.
퀸즈타운에서는 손발목이 아파서 휴양하며 지냈다. 카메라를 많이 들고 다니지 못한 것, 루지를 못 탄 것, 전망대까지 하이킹 못한 건 아쉽지만 칵테일도 많이 마셨고 비싼 것도 두세번 먹었다. 기억나는 건 월드바하고 Eichardt's Bar라는 곳이다. 월드바는 퀸즈타운에서 유명한 술집인데 칵테일을 둥근 티팟에 만들어준다. 보드카잔에 덜어 마시는데 귀엽고 재밌었다. 이날은 아이스티를 마셨는데 보드카하고 데킬라, 진을 섞어 만든다. 할 것도 없는데 잠이 안오면 이런 여러개 섞은거 먹고 잠자는게 최고다. 퀸즈타운 최고의 맛집은 Eichardt's bar라는 곳이었는데 가게 바로 앞이 레이크 프론트라 낭만적이게도 창가자리에 앉아 해가 넘어가는 걸 볼 수 있다. 원래는 리치 앤 로즈 마티니를 마시려고 갔는데 메뉴판에 있는 토끼 파테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토끼 빠떼 먹는데 리치앤로즈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체리스모크를 시켰다. 서양대추 인퓨즈드 위스키가 베이스였는데 쓰고 달고 상큼하고 너무 맛있었다. 직원들 서비스도 너무 좋았고 토끼도 맛있었다.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퀸즈타운에서는 엄청난 가격대도 아니다.
오랫동안 멀리 나다니다 보면 있던 곳에 두고온 게 뭔지, 그리운게 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온다. 그래서 호치민에서 친구 두 명과 엄마아빠에게 엽서를 썼다. 퀸즈타운에서는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런가? 겨울에 퀸즈타운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다. 다음에도 여기 온다면 겨울에 와서 새하얀 설산을 보며 옆 테이블에서 시켰던 먹물오징어튀김을 먹으면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엔 밀포드 사운드로 멋진 여행을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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