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언즈에서 반시계방향으로 호주를 여행하면 갈수록 커지는 도시들이 반갑다. 퍼스부터 여기가 도시인가? 애들레이드에서는 여기부터 도시인가? 아니 도시란 뭘까 했는데 브리즈번부터는 확실히 도시였다. 그 이전엔 밤이면 사람들도 없고 대중교통도 미비해서 해가 지기 전이나 지고서 바로 집에 돌아와야 했고, 무엇보다 밤이면 불이 전부 꺼지기 때문에 야경이라고 할 게 없었는데 브리즈번부터는 야경을 볼 수 있었다. 보케사진도 정말 오랜만에 찍었다. 브리즈번 야경을 처음 봤을 땐 여행할수록 도시라서 야경도 예뻐지는구나 했지만 야경은 브리즈번이 가장 예뻤다. 건축 크레인에 파란불이 있는 걸 보고 도시 자체에서도 야경에 신경쓴다는 걸 알았다. 시드니도 예쁜 도시지만 야경에 있어서는 오페라 하우스면 됐지 뭘 또 바라냐고 말거는 느낌이다.
해가 지는 잠깐 동안 황금색으로 물드는 도시도 야경만큼이나 예쁘다. 호주 여행하면서 거의 처음 찍는 것 같은 보케사진도 감격하며 찍었다. 낮에도 보케를 찍을 순 있지만 야경이 아니면 보케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잘 안들어서 셔터찬스를 많이 놓친다.
맑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서 반짝반짝하는 야경을 보는 동안 진심을 다해서 행복했다. 반짝이는 것도 밤도 강도 좋아하니 브리즈번은 가장 좋았던 도시로 특히나 야경을 보던 순간은 호주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이름붙이고 싶다. 실제로 그러기엔 더 좋은 곳이 많았으니 그러지 않을 거지만. 찌르르 하는 풀벌레 소리만 들렸으면 더 완벽했을 것이다. 나는 아침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므로 새가 지저귀는 아침이라는 구절에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 문장이 싫다. 달과 별이 보이는 어두운 밤하늘에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아침햇살과 새소리보다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한국에 있는 집에서도 창으로 강을 볼 수 있지만 강 바로 옆에 있어서 강물에 비치는 불빛을 볼 수는 없는데 그걸 한국에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브리즈번에서 본 걸 생각하니 그냥 이때를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할까 싶다.
내가 갔을 때에는 브리즈번 페스티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브리즈번 중심가에서 웨스트엔드 쪽으로 바라보는 야경이 평소보다 더 화려했다.
브리즈번을 사랑한 또다른 이유는 무료 페리가 있다는 점이다. 야경은 매일매일 봐도 좋은 것이니 다른 도시와 확실히 비교되는 강점이다. city hopper가 브리즈번 무료 페리인데 2층석까지 있고 종점에서 내릴 필요도 없어서 north quay에서 타서 다시 north quay로 돌아올 때까지 앉아있어도 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야경을 볼 때는 다른 곳에서 타면 2층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으니 시작점인 north quay에서 타는 걸 추천한다. 2층의 왼쪽에 앉는게 야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브리즈번 강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다.
eagle street pier를 지나 holman street을 향하면 분홍색 조명의 story bridge가 보이기 시작한다. 스토리 브릿지의 스토리는 남성 공무원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스토리 브릿지 쪽으로 넘어가면 야경은 자잘한 불빛이 늘어나서 더 화려해진다. 스토리 브릿지에 핑크색 조명을 단 것과 크레인에 파란색 조명을 단 걸 보고 도시가 형형색색의 야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원래도 예쁜데 노력까지 하니까 예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야경이라고 치면 보통 나오는 사진들은 야경이라기보다는 불빛만을 위해 찍은 사진인 것처럼 너무 밝고 셔속도 길어서 정신없어서 실제로 보기 전에 그런 사진을 먼저 봤으면 일부러 도시 건축물에 색을 넣다니라고 생각하면서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마냥 예쁘기만 했다.
시드니 스트릿에서 다시 노스키에 돌아갈 때는 브리즈번 휠까지 볼 수 있다.
강 바로 옆의 물기둥은 브리즈번 페스티발 기간에 매일 3번 한 river of light인데 물기둥들을 배경으로 여러가지 그림을 레이저로 비추면서 애보리진 전설 얘기를 하는 물쇼다.
멀리서 보거나 사진으로는 정말 예쁜데 가까이서 보면 별로 볼 건 없다.
60m의 브리즈번 관람차는 한 번 타는데 15분 정도 걸리고 4~5번 돌고 마지막엔 위에 꽤 오래 멈춰있는다. 한 번 타는데 21달러인데 구글링 좀 해서 싼 티켓을 사면 좋다. 그런데 잘못 생각한 것이 야경은 시티 호퍼 타고 한 바퀴 도는 게 가장 감상하기 좋은 방법이다. 관람차는 낮에 타거나 해가 지고 있을 때 보는 게 더 좋았을 것 이다.
the wheel of Brisbane, 15호주달러(할인 사이트 가격).
이렇게도 좋은 브리즈번에서, 그중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깨끗했던 사우스뱅크의 인공수영장에서 수영하면서도 다윈의 릿치필드 호수를 그리워한 것은 왜일까. 도시로 올 수록 좋은 점은 크게 돈 쓸 일이 적어진다는 점, 야경이 있다는 점이고 나쁜 점은 평범해진다는 점이다. 호주의 관광 슬로건은 '호주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there's nothing like Australia'인데 그걸 깊이 느낀 건 로트네스트 섬의 인도양을 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다윈에서 악어와 수영하고 호주의 배꼽 울루루에서 해가 저무는 걸 볼 때였다. 앞으로 이것보다 멋진 걸 볼 수는 있어도 절대 비슷한 거라도 찾지는 못하겠구나. 여기서밖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도 호주 말고 어디에도 없지만 그걸 로트네스트 섬의 인도양과 울루루의 빨간 모래에 비할 수는 없다. 쓰고보니 정말 다윈에 가고싶다. 그 숨막히는 공기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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