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유명한 도시는 북부의 하노이와 중부의 다낭, 남부의 호치민이 대표적이다. 다낭은 휴양지 스타일의 도시인데 바나힐은 다낭에서 조금 떨어진 산에 있는 테마파크같은 곳이다. 풀네임은 선 월드 바나힐 sun world ba na hills로, 프랑스 마을이 유명한 곳이다.
바나힐은 다낭에서 차로 2시간이 조금 안 걸리는 먼 곳에 위치해있다. 개인으로 가려면 보통 택시를 탈텐데, 갈 때도 택시를 타야 하니 보통은 가는 택시를 탈 때 시간 맞춰 여기까지 와달라고 드라이버에게 얘기하면 되고, 보통은 바나힐에 가는 택시 안에서 드라이버가 먼저 이런 딜을 해올 것이다. 나는 바나힐에서 얼마나 있을 지 모르겠어서 따로 투어프로그램을 예약했다.
다낭 바나힐 당일치기 투어, US$51.
바나힐 입구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첫번째 케이블카를 타면 빨간 줄무늬 지붕의 플랫폼같은 곳에 내리게 되는데 여기가 골든브릿지와 바로 연결이 되어있다. 거대한 큰 손이 금색 다리를 들고 있는 모양인데 생각보다 손이 엄청 거대해서 카메라에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날씨도 (보다시피)좋지 못했다. 바나힐에 막 도착했을 때 산 아래는 화창하고 산 위에 안개가 엄청나게 끼어있었다. 이 첫번째 케이블카를 타다가 비가 오기 시작했고 투어 가이드가 우비를 나눠줬다. 그 비닐쪼가리 우비를 입고 골든브릿지를 건넜는데 비도 비지만 안개가 정말 심했다. 얼마나 심했는지 linh ung 사원의 키큰 부처상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린응 사원은 위의 파란색 대문(?) 근처에 있는데 사원 내부의 부처상도 외부의 부처석상들도 참 좋았지만, 다시 보다시피, 날씨가 침대에 누워있기 딱 좋은 날씨였다. 여행에 우비와(우산이 아니다.) 선글라스가 동시에 여행필수품인 뉴질랜드와 그 뉴질랜드의 고산지대를 오르며 변덕스럽거나 거지같은 날씨에는 나름 적응했다 생각했음에도 좀 아니다 싶은 그런...
그럼에도 비가 와서 좋다 싶은 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왓 프라깨우의 섬유박물관에서 산 우산을 드디어 양산이 아닌 우산으로써 기능하게 해줄 수 있었다는 점이었고, 린응 사원 근처의 빗속 꽃정원은 참 예뻤다는 점이었다. 난 수국이 좋다. 비내린 수국꽃을 보면 예전에 자주 놀러갔던 할머니의 기와집이 생각난다. 장마철에 놀러가면 뒷정원의 내 얼굴만한 보라색 하늘색 수국을 보고있고는 했다. 풍성해서 화려해보이지만 조용해보이는 꽃. 구름을 닮아서 속이 꽉차있을 것처럼 풍성하게 생겨서는 꽃잎을 살짝만 건드려도 텅 빈 안으로 쑥 빠져버리는 수국. 과학책에서 아하. 구름은 아주 작은 물방울droplets 또는 얼음알갱이로 이루어져있구나!라고 배워도 하늘의 구름은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할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을 통과하며 구름결은 손에 도저히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은 거란 걸 체감했을 때의 충격과 허무란. 또 충격과 허무의 사실을 쓰자면, 수국의 저 화려한 꽃잎은 사실 꽃이 아니라 꽃받침이라는 것. 수국꽃은 저 화려한 꽃받침 속의 작은 동그라미다. 또 하나 더. 수국은 수술만 있는 고자다. 제발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순 없는 걸까. 하지만 그래도 파란약보단 빨간약을 삼키는 삶을 살아야지.
이 바나힐에서 골든 브릿지를 비롯해 또 유명한 것은 두 번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있는 프랑스 마을이다. 프랑스 마을의 한 뷔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스프링롤과 동파육 스타일의 대만식 돼지고기에 고기스튜, 꽃빵을 잔뜩 먹고 레몬차를 마셨다. 비가 너무너무와서 프랑스마을은 돌아보지도 못했다. 투어가이드는 4시에 바나힐에서 내려간다고 했다. 식사를 마쳤을 땐 2시 반이었다. 이 비오는 해발 1,500미터에서 뭘할까 고민하며 판타지파크에 들어갔다.
판타지파크는 3층짜리 실내 테마파크다. 그런데 큰 규모 치고 놀이기구들이 담백하게 생겨서 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좀비를 쏴죽이는 총게임을 몇 번 깔짝이다가 곳곳에 있던 안마의자에 무심코 앉아 돈을 넣었다. 가이드가 찾아다니기 4시 전에 가까스로 일어설 수 있었다. 특히 목마사지가 매우 감격스러웠다. 장대비로 어지러운 뇌와 피곤한 몸에 큰 선물이었으며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처음엔 6분짜리 코스를 선택했다가 6초같은 6분이 지났다. 고민없이 30분 짜리 코스를 두 번 선택했다. 일어나고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바나힐은 수국과 안마의자로 기억될 것 같다.
다낭에 도착했을 때에도 다낭에서 하노이로 갔을 때도 이 흐린날은 계속됐다. 그래서 드디어 카페쓰어농(따듯한 연유커피)을 마실 수 있었고, 쌀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락사 먹기에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이열치열을 뼛속깊이 혐오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락사는 유명하니까 시도했다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어서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시도해보지 않았는데 운좋게 날이 흐리고 쌀쌀해 안심하고 쌀국수를 시킬 수 있었다.
영어권에서는 이제 쌀국수noodle soup란 이름보다 포(내지는 퍼)pho라는 고유명사가 더 유명해진 베트남 쌀국수는 하노이의 새벽녘 길거리음식점에서 시작됐다. 소고기나 닭고기를 넣어 먹던 북부의 쌀국수는 국수면이 넓고 국물이 담백하며, 고명은 파와 양파 정도로 간단했다. 북부 사람들이 남부로 이주해오며 반미와 쌀국수를 남부에 전했다. 그러면서 육수와 고기고명에 차이가 생겼다. 남부의 쌀국수는 국물이 진하고 달다. 진한 쌀국수 국물은 소뼈와 소고기, 양파, 카다몸, 생강, 팔각, 계피, 정향등이 들어가서 갓 끓은 국물은 서빙되자마자(혹은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요상하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고 맛도 풍부하다. 또 고명이 라임, 타이바질, 레몬바질, 고수, 민트, 숙주, 고추 등으로 푸짐하고 칠리소스와 해선장같은 소스도 나온다.
국물부터 한모금 떠마시면 이 낯선 향과 기름진 맛에 입맛이 돈다. 육수는 기름진데 쌀국수가 담백하니까 한그릇 전부 먹기에 부담이 가지도 않고 야채도 같이 먹는다는 생각에 이건 건강에 좋은거야라는 합리화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따끈한 육수는 비오는 추적추적한 여행지도 좋은 기억으로 만들 수 있으니 이정도면 사랑해줄 만 하지 않은가.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비가 오거나 흐려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국수를 먹고 따듯하고 달콤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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