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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베트남

호이안과 하노이는 정말 헷갈려: 사랑스러운 베트남의 노란색

by 마리Mary 2019. 11. 22.

오행산 현공동굴의 감동을 가지고 호이안으로 달려갔다. 호이안은 오행산에서 차로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구시가지 건물이 잘 보존되어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그래서 호이안 올드타운이라고 많이 부른다. 특히나 가장 유명한 건 사진의 풍등이 불을 밝히는 호이안의 야경이라, 낮에는 한산하지만 밤이 되기 시작하면 투본 강에서는 소원등을 날리는 배가 가득하고, 바로 옆 도로에서는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로 즐비한 곳이 된다. 나역시 풍등 야경을 보러 갔는데 도착한 게 3시 반이고 해가 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구시가지 산책을 할 수 있었다. 

 

호이안은 15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동남아의 매우 중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 조선은 끼어들 자리 없는 시기로(하응아 왜그랬어), 많은 중국인, 일본인, 네덜란드인이 대부분인 외국 무역상들로 북적북적했다. 비단과 도기와 향신료에 미쳐있던 나날들이었겠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무역은 점점 사그라들고 건물만은 남아있는 곳이 호이안 올드타운이다. 이 호이안의 특이점은 벽의 노란빛이다. 언젠가는 샛노랬을 벽들은 때가 타고 칠이 벗겨져 빈티지가 되었다. 하지만 호이안의 노란 벽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워서 sun-kissed yellow라는 말은 꼭 이를 위한 단어같다. 햇빛을 그대로 발라놓은 듯한 노란색. 색이 죽어도 빛바랠 수 없는 그런 색이었다.

 

호이안만큼은 아니지만 노란색 건물은 베트남에서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노란색은 한국인들에게 애써 설명할 것 없이 이 아시아 등지에서 권력의 상징이었다. 중국인들의 금 사랑에 대해서도 굳이 말할 것도 없겠지. 베트남에서 노란색은 한때 왕의 옷이나 물건들에만 허락되었다. 그래서 노란색은 특히나 행운이나 영광을 상징한다. 그리고 실용적인 이유를 하나 들자면 노란색은 열을 덜 흡수하는 색이라서 현대에서도 건물에 노란 색을 입히기도 한다.

 

이 도시의 노란색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호이안에서 며칠 머무르며 산책하고 구경하고 사진찍기에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러지 못해서 아쉽지만 해가 진 후의 호이안은 심각하게 관광객이 많아서 풍등사진만 빨리 찍고 나와야 했다. 다낭보다도 더 매력적인 도시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다낭은 바다에 리조트가 있는 전형적인 휴양지라 다낭 도심에 핑크성당을 빼면 딱히 이렇다할 볼거리는 없지만 호이안은 기본적으로 예쁘고 유네스코에 이름도 올렸다 하지 않나.

 

베트남에선 사랑스런 노란색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에그커피의 크림색. 북부 베트남에서 시작된 에그커피는 베트남어로 카페쯩이다. 진하고 뜨겁고 신맛이 나는 커피에, 달걀 노른자와 바닐라 시럽 또는 설탕과 연유를 넣고 곱게 간 찐득한 달걀크림이 가득 올라간다. 비엔나커피처럼(요즘은 아인슈페너라고 부르는 그거.) 섞지 않고 호록 마시는 커피다. 커스터드같은 부드러운 크림맛부터 느껴지고 그 다음에 찐하고 신 커피맛이 샥 올라오는데 아윽 소리가 절로 나오게 달콤하고 맛있다. 크림이 하도 쫀쫀하다보니 그 아래에 덮인 커피가 잘 식지 않는데, 커피가 너무 뜨거우면 스푼으로 커피와 크림을 함께 떠먹어도 좋다. 호이안에서 마신 카페쯩은 코코아파우더가 올라가서 티라미슈 맛이 났다.

 

구글에 치면 나오는 레시피(출처)는 이렇다. 계란노른자 한 개와 가당연유 4테이블스푼을 섞어 가볍게 거품이 일거나 부드러운 뿔이 생길 때까지 휘핑하고 12온즈(약 350ml)의 에스프레소에 올리는 것.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로 한 순간의 행복을 사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코코넛 아이스크림 커피도 마셨는데, 커피에 코코넛 밀크와 연유를 곁들이고 코코넛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올라간 커피였다. 이건 너무 달아서 스타벅스 맛이었다. 아이스크림 없는 코코넛 커피를 마셨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카페이름은 Hoi An Roastery - Roastery 1, 주소는 135 Trần Phú, Phường Minh An, Hội An, Quảng Nam, Vietnam. 딱히 찾아간 곳은 아니었고 간판이 예뻐 들어갔는데 좋은 곳이었다.

 

여행을 하며 정말 행복해지는 순간은 이렇게 그 나라의 것을 엿보고 맛볼 때인 것 같다. 그래서 별 기대하지 않았던 동남아가 예상보다 더 즐거운 기억으로 남고, 여행할수록 더더욱 기대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너만 할 수 있는 걸 보여줘. 마치 인력난 시기의 CEO가 대체가능한 구직자들에게 하듯이.

 

이렇게 자기 나라만의 음식문화가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하지만 한국의 음식문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해줄 말은 없다. 하지만 유자차면 어떨까. 한국의 차 문화는 특이한 데가 있는데 찻잎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모든 음료를 차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유자차나 자몽차같은 건 엄격히 말하면 찻잎이 없으므로 차가 아니지만 한국인끼리는 누구나 설탕에 절인 유자나 자몽을 따듯한 물에 타먹는 그거라고 알아들으니 얼마나 한국적인 문화인가. 

 

그러나 유자차를 비롯한 찻잎없는 차는 문화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일상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없으니까. 한국인의 일상적인 한국문화는 내가 떠올리려 해도 번뜩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일본은 연말이면 지금도 손편지를 쓰고 러시아는 꽃선물을 일상적으로 하고 중국은 어떤 음료도 따듯하게 혹은 미지근하게 마시는 그런 것들이 쉬이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오히려 더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네. 외국인 관광객에게 물어보면 더 쉽게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나는 거지만 음식이 극한의 양끝을 달린다는 것도 꽤 특징적일 수 있겠다. 가장 대중적인 술인 소주는 알콜맛밖에 나지 않고 여름엔 냉면과 물회에 얼음을 띄워먹고 겨울엔 펄펄 끓으며 식탁에 올려지는 찌개처럼(근데 왜 녹차와 맥주는 싱거운 걸까). 내가 몇 안되게 즐기는 술 중 하나인 막걸리도 너무 좋지만 씁쓸한 사실이 있다. 전통주는 어느 나라던 그 나라에서 나는 것들로 만든다. 그 어느 못사는 나라라 하더라도 자국술은 자국의 공기를 마시고 자란 재료로 만든다. 하지만 한국 막걸리 성분표에 유의미한 국산표시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우리쌀로 만들었다면 그게 광고거리가 되는 수준. 우리것이 좋은것이여 하는 신토불이는 싫지만 외국인이 너네 나라는 뭐가 유명하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게 제주도밖에 없다는 건 다른 문제다. 케이팝이나 킴치의 ㅋ도 입밖에 내기 싫다면 더더욱.

 

나는 차라리 둥굴레차라고 대답하고 싶다. 다이애나 들어봐, 한국인들은 구수한 맛을 좋아하거든. 구수한 맛이 뭐냐고? 한국의 맛이라고 생각하면 돼. 너가 구수한 맛을 알게 되면 넌 한국을 마스터 하는 거야. 하지만 이러면 상대쪽에선 십중팔구 김치얘기가 나올것이다. 아니면 한식의 대명사 뚱카롱.. 아니면 배달음식.. 하지만 배달은 배달음식 몰래 처먹는 거지놈들 때문에 됐다고 본다.

 

그러니까 난 더욱 베트남의 커피문화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구름낀 하노이에서 드디어 카페쓰어농을 마셨을 때는 더더더욱. 사실 커피문화라고 해도 커피에 연유를 넣는다는 것 뿐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연유를 참 사랑한다(하는 것 같다.). 커피에도 주스에도 연유가 들어가서 설탕보다 더 달콤하고 부드럽다.

 

하노이가 드디어 나왔으니 말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남들에게 그 여행에 대해 설명할 때 정말 헷갈렸던 게 있었는데 호주의 퀸즐랜드와 뉴질랜드의 퀸즈타운이었다. 퀸즐랜드는 호주의 한 주이고, 퀸즈타운은 뉴질랜드 남섬의 한 도시 이름이다. 근데 말할 때마다 호주 퀸즈타운의 케언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했고 뉴질랜드의 퀸즐랜드 호수는 정말 예뻤다는 얘기가 튀어나왔다. 말하다가 뭔가 이상한데 생각하다가 아 아니야 호주가 퀸즐랜드, 뉴질랜드가 퀸즈타운이야 하면 정말 갔다온거 맞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얘기와 하노이가 무슨 상관이냐면 베트남의 호이안과 하노이도 딱 이랬기 때문이다. 나라를 헷갈린 퀸즐랜드와 퀸즈타운보단 낫다고 생각하지만. 하노이 올드타운 밤에는 생각보다 볼 거 없더라 아니 하노이가 아니라 호이안이지. 한동안은 카페쓰어농을 마신 게 호이안이더라 하노이더라 잠시 생각하고 말해야 했다.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의 다낭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이고,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베트남 북부에 위치해있다. 호이안은 중간 하노이는 북쪽. 이 글을 쓰면서도 호이안과 하노이를 몇 번이나 반대로 쓰고 있다. 호.이.안.은 중부. 하.노.이.는 북부.

 

하노이의 성요셉 성당 바로 앞에, 하노이 하우스 카페라는 카페가 있다. 대각선 맞은편에 그 유명한 콩카페가 있었지만 그렇게도 유명하기 때문에 가기 싫었다. 사진 가운데의 작은 네모 간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이쪽이 카페라고 써있다. 그런데 이 표시들이 빛이 바래있어서 영업을 하는 곳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했는데, 2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카페가 나왔다.

 

조용했지만 술도 팔고 주스도 파는 곳이었다. 이날은 운명적으로 날이 흐렸으므로 좁은 테라스 자리에서 카페쓰어농을 마셨다. 호치민시티에서 처음 마신 카페쓰어다도 감동의 맛이었으나 카페쓰어농은 그 이상이었다. 따듯해서 커피와 연유의 부드러운 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새큼한 커피와 달콤한 연유라면 구리구리한 하늘 아래 매연 낀, 번잡한듯 질서있는 하노이의 길거리도 행복해졌다. 한국에서도 연유를 사다가 연유커피를 해먹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카페쓰어농의 맛에는 베트남의 공기가 녹아있다. 이건 베트남에서 마셔야하는 거다.

 

카페쓰어농, 28k동(추정). 1400원의 가격또한 당연히 사랑할만 하다.

 

*카페는 커피, 쓰어는 연유, 다는 아이스, 농은 핫. 수학기호처럼 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