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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의 3박 4일

by 마리Mary 2019. 9. 23.

호바트 국내공항에서 멜번 공항으로, 멜반 공항에서 싱가폴 공항으로, 싱가폴 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 공항까지 대략 10시간의 여정이었다. 이렇게 괴로울 수가. 심지어 에미레이트를 타서 영화를 세 개나 보고 맛있는 식사하고 차 마시고 주스 마시고 간식으로 나온 샌드위치는 싱가폴 공항에서 노숙하며 아침식사로 먹기까지 했는데. 싱가폴 공항은 예뻤다. 미니정원도 있고 만국콘센트도 있었다. 그 예쁜 공항에서의 노숙 이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한 건 오전 8시 30분으로 숙소 체크인은 3시부터였다. 이때부터 호주나 뉴질랜드와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보통 거기서는 체크인이 2시, 체크아웃이 10시던데. 사소한 것들부터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약 5시간 동안 어디서 뭘 해야하는지 생각하면서 우선 공항버스를 타는 가장 아래 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내려서 쿠알라룸푸르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스카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스카이버스 이름을 보고 굉장히 반가웠는데 오클랜드에서 봤던 공항버스 이름이라 뭔가 시스템이 갖춰져있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봤자 체크인을 기다려야 했고 난 무척이나 피곤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 바로 옆의 캡슐호텔에 갔다. 6시간 숙박비를 결제하고 우선 감옥같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 다음 잠을 잤다. 너무 깊게 잠들어서 체크아웃 시간보다 늦게 체크아웃했는데 late fee도 받지 않았고 직원도 엄청 친절했다.

 

스카이버스 예약화면을 버스기사에게 보여주고 버스에 올라탔다. 뭔가 굉장히 이상한 글자의 광고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진의 말레이시아 국기도 보였다. 여기가 말레이시아라는 곳이구나.

 

말레이시아는 한국 여권으로 무비자 90일이다. 1링깃은 약 300원이다. 항공비를 제외한 여행경비는 어딘가에서 환전했던 570링깃으로 한국돈 16만원 정도.

말레이시아 스카이버스 공항-시내 왕복, 20링깃.

캡슐호텔 6시간, 55링깃.

호텔 디파짓, 50링깃. 이 호텔 디파짓은 숙박비와 관련없이 지불해야 하고 돌려받지 않는다.

 

해외에서 마주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그렇게 반가울 때가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마주친 차타임ChaTime이 그랬다. 차타임은 대만의 밀크티 프랜차이즈로 처음 본건 호주 애들레이드의 차이나타운에서였다. 먹어보기론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호주를 여행하며 간간히 보아온 그 익숙한 보라색 프랜차이즈 간판이, 스카이버스가 나를 떨군 KL Sentral 역 1층에서 반짝이는게 너무 반가워 그대로 캐리어를 질질끌며 달려갔다. 가장 저렴한 것을 골라 주문했다. 직원들은 지치고 긴장한 이방인에게 친절하게 무관심했다. 그리고 받아든 버블티는 놀랍게도 버블이 절반이었다. 버블티를 정말 좋아하는 나지만 공차에서 버블티 하나에 팔천원을 지불하고 버블을 너무 빨리 먹어버리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하며 먹을만큼 사랑하진 않는다. 버블을 마음껏 먹고도 버블이 남아있는 버블티는 처음이었다. 이 버블티를 시작으로 난 동남아와 사랑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허둥지둥하는 상태에서 만난 반가운 프랜차이즈와 맛, 양, 가격 빠지는 것 없던 동남아의 첫 음식이자 첫인상은 지금까지도 혀끝에 남아있다. 약간의 기운을 충전하고 KL Sentral 역에서 다시 트레인을 타고 어느 역에 내렸다. 숙소는 역 바로 앞이었다. 운이 좋았다.

 

차타임 버블티, 7.9링깃. 2,200원. 충격적인 물가.

MSBK트레인, 1.3~2링깃. 대략 600원 값의 대중교통엔 대강 보아도 현지인이 대부분이라 관광객인 내가 이상해질 수 있다. 하지만 버스와는 다르게, 말레이시아 트레인은 정비가 잘 돼있어서 관광객이 이용하기에 무리가 없다. 탈 역과 내릴 역을 키오스크에서 찍고 돈을 넣으면 파란색 토큰이 나온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첫 식사는 숙소 앞 센트럴 마켓 안 2층 식당가의 나시르막이었다. 나시르막은 코코넛밀크와 판단잎을 이용한 쌀요리인데 작은 멸치같은 걸 바삭하게 튀긴 것, 삶은 계란, 오이, 땅콩 등등에 밥이 나온다. 특이한 건 삼발이라는 양념소스인데 매콤한 맛이 난다. 요리에 사용되기도 하고 소스처럼 찍어먹기도 하는 걸 보면 한국 고추장과 비슷한 포지션. 

사진은 KLCC의 마담콴스에서 먹은 락사로 생선이나 닭 육수를 맵게 만든 면요리다. 맛없어서 남겼다. 뒤에 비치는 건 satay꼬치요리인데 센트럴 마켓 노점상에서 사먹은 게 더 맛있었다. 여기까지 했던 식사는, 뉴질랜드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남자애에게서 들은, 자기 나라가 싱가포르보다 나은 건 요리 뿐이라는 말에 강한 의심을 품게 했다.

 

꽤 기대했던 치킨라이스 또한 딱히 맛있지는 않았다. 치킨라이스는 닭을 삶고 얼음물에 담궈 닭껍질을 쫀쫀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인 닭요리로, 함께 나오는 밥은 닭육수로 짓는 것도 특징이다. 말만 들어선 맛없을 수 없는 요리인데, 갔던 음식점이 별로였던 건지 딱히 큰 임팩트는 없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KLCC의 올드타운 화이트커피의 카야토스트 세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올드타운 화이트커피에서는 테이블에 있는 펜과 종이로 테이블 번호와 메뉴 번호, 수량을 적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면 된다. 카야잼토스트에 온천달걀스러운 계란과 간장을 섞은 걸 찍어먹는 요리인데 맛있다. 간장은 짠 간장이니까 많이 넣지 않도록 주의한다. 말레이시아 밀크티인 떼따릭도 같이 시켰다. 첫 날의 차타임 버블티처럼 요상하고 코를 톡 쏘는 향신료 냄새가 강렬하고도 상쾌하다. 태양이 미치도록 내리쬐는 동남아의 12시부터 1시 사이의 기온을 피하기 아주 좋은 장소였다. 12시부터 2시까지는 반드시 쇼핑몰에 들어가있거나 카페에 앉아있으며 햇빛을 피해야 한다. 안그러면 녹아버릴 수 있다.

 

락사는 입맛에 안 맞았고, 치킨라이스는 먹을 만 했고, 나시르막과 카야토스트는 맛있었다. 하지만 칠리크랩은 단연 가장 감동적인 맛이었다. 칠리크랩을 하는 식당 중에 갈만한 곳은 두 세 군데 정도 있었다. 그런데 모두 오후에 열어서 혼자 갔다 혼자 오기가 부담스러웠고, 사진을 보니 누가봐도 볶음밥을 같이 먹어야 하게 생겼는데 그럼 양이 많아서 남길 것 같고, 식당에서 주는 물티슈는 비싸고 또 먹을 때 물티슈를 많이 쓰기 때문에 아예 물티슈 한 통을 들고 가는 게 좋다고 할 만큼 번거로운데 모두가 맛있다고 칭송을 하기에 이걸 먹긴 해야겠다고 고민을 했는데, 나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fatty crab에서는 배달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이다. 미디움사이즈 sweet & sour crab은 92링깃, 스몰사이즈 해산물볶음밥이 12링깃이다. 배달료는 10링깃. 이 패티크랩은 월요일에 쉬고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한다. 그리고 내 모든 여행사진을 걸고 말하는데 맛있었다. 또 먹고싶다. 이건 반드시 먹어야한다. 꼭 볶음밥과 함께.

 

나시르막, 29.9링깃.

카야토스트에 계란 추가와 테타릭, 16.2링깃.

satay, 18.88링깃.

락사, 16.29링깃.

칠리크랩, 볶음밥과 배달료 포함, 114링깃. 말레이시아에 있으면서 이때 유일하게 카드를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cash on delivery였다. 프론트에서 너 배달시킨거 왔다고 전화해서 내려가 현금결제하고 받아왔다.

 

센트럴 마켓 근처엔 쿠알라룸푸르 시티 센터가 있다. 인증샷 장소인 I love KL 조형물이 입구에 있는 곳으로, 쿠알라룸푸르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이나 조형물같은 걸 볼 수 있다. 어댑터같은 여행용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곳 옆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두리안 케이크와 3 layered tea를 마셨다. 두리안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두리안 맛이라곤 못하겠지만 두리안 케이크는 요상한 양파같은 향이 났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두 번 먹으라면 먹을 수도 있는 맛이다. 뭔가 굉장히 요상한데 향기롭기도 하고 식감은 또 엄청 부드럽다. 진짜 두리안은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으므로 출구에서 파는 두리안 아이스크림도 먹어봤는데 두리안을 이용한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은 먹을 만 한가보다. 맛있었다. 부킷빈땅 쇼핑몰 근처에 아이스크림 노상에서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도 먹어봤는데 이것도 맛있었다. 향도 적응이 되어갔고 무엇보다 정말 크리미하고 부드럽다. 이 식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3 layer tea는 삼층 밀크티인데 제일 아래는 팜슈가 시럽, 가운데는 연유, 마지막엔 홍차가 들어가는 밀크티다. 전부 섞어 마셔도 좋고 달콤한 연유부터 살짝 맛봐도 맛있다. 큰 빨때와 얇고 긴 티스푼이 컵에 담겨 나오는 게 귀여웠던 밀크티.

 

두리안 케이크, 20링깃.

3 layered tea, 10링깃.

 

KL 시티센터 옆엔 메르데카 광장이 있다. 뒤의 큰 건물은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이다. 건물들에서 약간 유럽의 냄새가 나는 건 저게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통치할 때 세운 행정기관 건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메르데카 광장은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자기 국기를 게양한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 다리를 건너면 시간이 늦었었는지 어쨌는지 들어가진 못했지만 마스지드 자멕이라는 이슬람 모스크가 있다. 하얗고 예쁜 사원인데 내부를 구경 못해서 아쉽다.

 

이 모스크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오다가 또 큰 다리를 건너 아래로 내려오면 센트럴 마켓이 나온다. 안은 햇빛을 피할 수 있지만 쾌적할 만큼 시원하진 않다. 예쁜 터키 조명과 1월 1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널려있는 중국인의 새해스런 장식품들을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맥도날드는 현지마다 현지식에서 모티브를 딴 버거를 내놓는다. 나시르막 버거도 그중 하나인데 근처에 맥도날드가 없어서 먹어보진 못했다. 비록 기대했던 락사는 입에 안맞았고 날씨는 정말, 정말 더웠지만 망고스틴은 맛있었고 날씨가 더운만큼 4잔의 아이스커피와 3잔의 떼따릭, 3개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떼따릭에 깊이 감명받아 태국으로 떠나는 공항에서 (안그래도 캐리어는 터질 것 같은데) 떼따릭 파우더를 사오기도 했으니 무척 성공적인 3박4일이었다. 아무리 햇빛이 뜨거워도, 차갑고 달콤한 떼따릭을 마시면서 앉아있으면 여기도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더운 날씨인 만큼 KLCC쇼핑몰의 냉방시스템은 천국의 그것이다. 특히 아이스크림이 맛있다. 특특히 빨간 바탕에 흰색 하트가 그려진 wall's의 solero split과 matkool의 icy시리즈가 맛있다. 특특특히 솔레로 스플릿 아이스크림은 겉은 얇은 하드맛인데 안은 쫀득한 젤라또의 맛과 식감이었다. 한국에서도 기절할 만큼 더우면 이 아이스크림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한국 메로나의 쫀득함을 사랑한다면 분명 좋아할 맛이었다.

 

아이스크림, 1.8링깃. 510원. 51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