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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내륙

고창 청보리축제와 선암사

by 마리Mary 2019. 4. 30.

 

고창청보리축제라는 걸 처음 본 건 인스타그램에서 월별 축제를 정리해놓은 포스트였다. 청보리는 보리가 노랗게 익기 전까지의 상태를 얘기하는데 이렇게 익기 전에 베서 소 여물로 준다고 한다. 꽃도 아니고 그런 풀떼기보는 게 재미가 있나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보리란 게 너무 보들보들하고 귀여웠고, 또 청보리밭이 생각보다 넓었다. 게다가 이날은 하늘도 맑았다. 넓은 청보리밭은 온통 샛초록색, 하늘은 푸르고 뒤로는 멀찍이 납작한 산들이 배경으로 깔린다.

 

 

일하러 가다보면 튤립이 심어져있는 곳이 있는데 채 일주일을 못 가고 져버린다. 청보리축제는 꽃축제가 아니라서 한 달 내내 진행된다. 그 점도 꽃축제가 아닌 것의 또다른 장점이다. 근데 사람들은 청보리보다 유채꽃이 피어있는 곳에 더 많은 것 같았다. 예전에 낙동강 유채꽃 축제에서 유채꽃은 평생 볼 거 다 봤기 때문에 유채꽃은 안 보고 지나쳤다.

 

 

 

검정고무신에서 이기영이는 책가방을 멘다. 그시절에 이기영도 책가방을 메는데 어느날 책보를 쓰는 남자애가 전학온다. 기영이는 걔네 마을에 놀러가서 밀껌을 씹는다. 벼는 본 적 있지만 보리를 가까이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밀껌이 생각났다. 아직 4월이라 낱알도 안 생긴 쭉정이 상태지만 그 밀껌을 씹는 밀알처럼 왠지 통통해보였다.

 

 

 

좋았던 건 청보리밭이 꽤 넓어서 뽕짝노래가 나오는 곳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한 달 동안 하다보니 관광객도 분산이 되어서 주말 늦은 오후에도 붐비지 않았고 주차도 바로 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나오면 음식 파는 곳이 있는데 보리빵하고 복분자 아이스크림같은 걸 팔았다. 보리로 만든 국수도 팔았는데 냉면은 간장국물이라 메밀소바 맛이 났고 온면이 더 맛있었다. 90%이상이 보리라는 면은 밀가루 면과의 차이를 전혀 모르겠다. 갈 때 생수를 안 챙겨갔는데 세트에 블랙보리 음료수를 준 것도 좋았다. 근데 그 세트가 국수에 보리차, 고구마보리밥이었다. 국수먹는데 밥을 왜 또 주나 했는데 보리밥에 고구마하고 또 무슨 잡곡인지 뭔지 풀이 들어갔는데 이 고구마보리밥이 맛있었다.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선운사가 있다. 겨울엔 동백꽃이 피는 곳으로 유명하다. 입장료는 삼천원. 원래는 주차비도 받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무료였다. 

 

 

 

한 달 뒤면 부처 생일이어서 등을 달아놨다.

 

부처 생일과 예수 생일은 참 다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기독교가 세계 1위, 그 다음이 이슬람, 그 다음은 무교, 그 다음이 힌두교 그리고 5위가 불교지만 한국에서 종교는 교회 아니면 절이다. 근데도 그 종교 최고 네임드인 두 명의 생일은 시기도 분위기도 규모도 다르다. 우선 예수 생일은 타이밍이 좋다. 기본적으로 연말이라 하면 지난 1년간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축하하는 분위기니까 자연스럽게 예수 생일도 그런 분위기를 타게 된다. 연말이라 화려하니 굳이 예수 생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 즈음은 화려해진다. 또 교회는 특히 한국에서는 지천에 널려있으니 접하기도 훨씬 쉽다. 하지만 양력세계에서 음력생일은 잊고 지나가기 일쑤인데다 한국에서 절은 등산해야 볼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니 길가에 달린 연등을 보고서야 이즈음이 부처 생일이구나 할 뿐이다. 그래서 연등축제같은 건 꼭 가보고싶다. 화려한 부처 생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걸.

 

 

선운사를 지나 등산로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람쥐를 두 마리 봤다. 그리고 또 내려오다가 한 마리, 또 한 마리를 봤다. 다람쥐랑 청설모는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면 청설모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왜냐면 청설모는 농작물을 수렵채집하기 때문이다. 다람쥐는 떨어진 열매를 먹는데 청설모는 수확하기 전에도 호두나 잣 같은 애들을 먹어버린다. 청설모가 다람쥐를 잡아먹는다는 건 루머지만 그게 가능해보일 정도로 크기도 하다. 학교다닐 때 종종 옆산에서 청설모가 학교까지 내려온 적이 있는데 그 몸과 꼬리는 정말 육중했다.

 

그에 비하면 다람쥐는 작고 날래고 귀엽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래서 다람쥐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관광객들이 노점에서 파는 은행이나 밤을 주는지, 세 번째로 만난 다람쥐는 사람을 보고서도 카메라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저 찌끄만 발에 군밤을 물려줬어야 하는데 은행을 사서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선운사 대문을 나오고 걷다보면 기념품 가게가 있다. 기념품 가게에 붙어있는 작은 노점상같은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두부김치에 선운산생막걸리를 먹었다. 두부김치는 거창해서는 안되는 음식이다. 두부가 이미 단백질 식품이니까 김치에 고기같은 건 더더욱 금물이다. 김치는 시고 조금 짠게 좋다. 왜냐면 간장없이 먹어야 하니까. 여기에 뭔가 더한다면 두부 위에 검은깨 정도. 근데 여기 두부김치는 두부하고 김치에 참기름이 뿌려져있었다. 이런 건 너무 투머치아닌가했는데 세상에 살면서 먹은 두부김치중에 가장 맛있었다. 막걸리도 맑은게 상쾌하고 좋았다.

 

저녁으로 풍천장어도 먹었다. 풍천장어의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바닷바람이 부는 강, 즉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있다 해서 풍천이다. 저 선운사 앞 맛집에서 사장님한테 물어봤을 땐 장어를 키로당 팔아서 셀프로 해먹는 곳이 맛있다고 해서 간판에 셀프라고 써있는 곳에 들어갔더니 그 셀프가 그 셀프가 아니고 셀프바가 있다는 소리였다. 1인분에 3만3천원하던 풍천장어보다도 선운사는 다람쥐와 두부김치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청보리의 생풀냄새도. 아, 그리고 효자손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