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신탄진 벚꽃이다. 신탄진으로 벚꽃을 보러 가려면 kt&g가 아니라 로하스 공원으로 가는 게 좋다. 케이티엔지는 근래 몇년간 벚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하도 나무를 꺾어서 나무가 거의 죽어 꽃도 별로 없는데 사람은 모여들어서 매연때문에 공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로하스 공원 쪽도 가지를 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한 2년 후면 그쪽 나무들도 죽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전매청은 내가 매년 가는 곳이기도 하다.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는 곳. 어쩌다 할 게 없을 때에는 사진첩을 감상하거나 정리하거나 창밖 풍경을 찍는데 1년을 주기로 매년 4월의 벚꽃사진을 보면 웃기기도 하다. 매년 피는 벚꽃을 관례처럼 매년 찍고 있었던 것이 실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국인의 앨범 패턴이 내것과 다를 거 같지는 않다. 벚꽃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 많은 사람들 매년 4월 사진엔 벚꽃이 있지 않을까. 나는 목련을 훨씬 좋아하지만 집근처에 없어서 목련사진은 별로 없다.
벚꽃은 멀리서 보면 팝콘이 나뭇가지에 달린 것 같다. 딸기맛 가루를 팝콘에 묻혀서 딸기맛 팝콘을 만든다면 벚꽃하고 똑같아질 것 같다. 사실 그냥 흰색이어도 벚꽃하고 똑같지만. 벚꽃은 분홍색이 아주 살짝 섞인 흰색에 가깝지만 벚꽃이라면 분홍색이어야 한다. 그게 벚꽃 사진을 핑크색으로 보정하는 이유다. 그럼 이건 진짜 벚꽃 사진인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건 내가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오면서 사진 동아리에서 보정하는 걸 옆에서 보며 처음 가졌던 의문이기도 하다. 사진을 보정하면 그건 내가 찍은 그 대상에 대한 사진인가? 테세우스의 배와 비슷한 질문이다. 테세우스의 배가 오래될수록 사람들은 그 배를 다른 목재로 보수했고 종래엔 원래 있던 판자는 하나도 안 남았다. 이건 테세우스의 배인가? 또한 테세우스의 배의 낡은 목재로 다른 똑같이 생긴 배를 만들었다면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 나는 사진을 보정하면 내가 알던 그 대상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보정할 줄 몰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 뿐이고, 지금은 당연히 보정을 한다. 맥북 사진어플에 딸린 보정기능을 사용하는데 최소한의 보정을 하고자 하는 의도때문은 아니고 귀찮기 때문이다. 최근엔 selective color 기능이 업데이트 되어서 더더욱 만족하며 쓰고있다.
처음엔 사진을 예쁘게 하기 위해 보정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찍은 것 중에 두 세 장만 추려서 했는데 요즘은 하루 찍었으면 구도가 영 망했던지 노출이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잘못된 사진은 지운 다음 보정하면서 다시 한번 본다. 보정하는 중이라는 건 다시 사진을 찍는 중이라는 것과 같다. 카메라와 사람의 눈은 다르지만 내가 본 것을 꽤 비슷하게 찍는다. 하지만 집에 와서 다시 보면 그때의 풍경이 아니다. 왜일까? 그건 내가 이미 집에 와버렸기 때문이다. 사진은 현실과 비슷하지만 냄새도 없고 질감도 없다. 시각만에 의존하는 사진은 절대 벚꽃을 보면서 느낀 바람과 햇빛은 다시 느끼게 해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있던 그 때를 재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보정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벚꽃은 육안으로 보일만큼 핑크색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계속 좀 더 환하고 핑크빛으로 보정할까. 그래야 당시에 느낀 것과 비슷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지같은 사진이라도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면 괜찮지만 기억은 계속해서 사라지므로 사진은 현실보다 생생해야한다.
예전에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보정하지 않은 사진도 좋아하기는 한다. 지금도 종종 꺼내보는데 지나간 시간을 붙잡는다는 사진의 기초적인 기능만을 수행한 사진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3년에 한 번쯤 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