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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브리즈번, 케언즈, 골드코스트

에메랄드로 만든 바다에서 서핑하기 - 골드코스트 쿨랑가타

by 마리Mary 2018. 12. 14.


 쿨랑가타는 골드코스트에서 버스로 1시간 떨어진 동네다. Glink 종점에서 내린다음 700번 버스를 오랫동안 타고 엘리자베스 파크에서 내린다. 쿨랑가타 비치에서도 골드코스트가 멀찍이 보이긴 한다. 골드코스트에서 서핑을 하려면 서퍼스파라다이스에서 할 수도 있지만 쿨랑가타의 레인보우 비치가 진짜 파라다이스라고 쿨랑가타 사람들은 말한다.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싶지만 자기 지역에 이정도 자부심을 갖는 건 놀랄 정도로 근거가 없거나 누구나 인정할 만 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이 경우엔 후자다. 쿨랑가타의 바다는 아주 넓고 납작하고 파도가 잔잔히 친다. 그래서 처음 서핑을 하면 쿨랑가타에서 하는 게 좋다. 서퍼스 파라다이스란 이름의 서퍼는 서핑을 할 줄 아는 사람들 얘기지 서핑레슨 받으려는 사람은 아니다. 퍼스 로트네스트 섬에서의 바다는 정말 드넓고 깊은 대양같이 느껴졌는데 쿨랑가타의 해변은 보다 고요하다. 확실히 얕기도 하다. 색깔도 무지 다른데 케언즈에서 봤던 바다는 새파란 색에 가까웠고 여기 바다는 에메랄드 색깔이다. 에메랄드를 녹여 바다를 만든다면 이런 색이 될 것이다. 에메랄드를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이런 색을 전부 에메랄드라고 하던걸. 



 해가 질 때 언덕에 오르면 이곳이 왜 골드코스트인지 잘 알 수 있다. 해변도 바다도 건물도 모두 황금색으로 물들며 반짝이기 시작하는 시간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바다를 구경한다. 이러고 있기엔 정말 좋은 곳이지만 서핑 말고는 할 게 없다. 매일매일 서핑을 해도 즐거울 곳이지만. 특히나 열정없는 이 마지막 문장까지 쓰고 그만 두었다. 왜냐하면 한 달 동안 머물렀던 쿨랑가타를 비롯한 골드코스트에서 3주간 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한 달이나 이 작은 도시에 있기로 한 건 짐도 정리하고 바로 다음에 있을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하기 위함이었다. 뉴질랜드는 호주와는 달리 식료품조차 비싼 곳이었고 따라서 계획이 필요했다. 사람은 돈이 궁해지면 계획이란 걸 세우기 마련이다. 아무렴 뉴질랜드는 즐거운 곳이지만 여행은 계획을 세울 때가 가장 지겹다. 뉴질랜드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계획을 매일매일 세우면 화가 난다. 그래서 비가 온 지 2주 쯤 됐을 때는 숙박비를 환불받지 못해도 다른 곳에 갈까 뉴질랜드에 미리 가있을까 생각했지만 오기로 한 달 동안 하루 쯤은 맑겠지 생각하며 버텼다. 여기서 서핑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떠나기 전 마지막 일주일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그래서 3주를 기다린 끝에, 서핑을 할 수 있었다. 서핑이란 걸 처음 검색해본 건 엘렌 쇼에서 엘렌이 캘리포니아 남자애에게 서핑보드를 선물해줬을 때였다. 엘렌은 남자애에게 너 캘리포니아 사니까 서핑하겠네? 하고 물어봤고 남자애는 당연히 캘리포니아 사니까 서핑한다고 대답했다. 그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얼마나 생경한 개그이자 사고과정인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그때 서핑이란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굽이치는 파도 안에서 서핑하는 동영상을 보고 그냥 멋지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서핑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란 걸 안 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캘리포니아에서만 서핑하는 게 아니란 것도 정말 나중에 알았다. 그런 서핑만 봐왔음에도 그 서핑이란 걸 해봐야했기에 날씨가 맑아진 바로 다음날의 서핑레슨을 예약했다. 



 3주간 레이니코스트rainy coast에서 침대에 누워 서핑, 서핑레슨, 골드코스트 서핑레슨, 쿨랑가타 서핑레슨부터 시작해서 첫 서핑레슨에서 알아야 할 것, 서핑 주의점을 거쳐 한국 서핑포인트까지 인터넷에서 서핑을 계속했기에 상당히 긴장해있었다. 왜냐면 잘하고 싶었으니까. 잘하고 싶어서 준비를 계속 미뤘다. 이게 그토록 고대하던 서핑레슨 시간에 5분 늦은 이유다. 그날 서핑레슨은 나 혼자였다. 수강생이 하나면 2시간의 레슨시간은 1시간이 된다. 더 오래 하고 싶어서 부디 딱 한 명만 더 있기를 바랬으나 소용없었다. 옷은 웻수트와 래쉬 중에 고를 수 있는데 10월의 쿨랑가타는 바닷물도 따듯해서 웻수트를 입지 않아도 된다. 이 웻수트는 다이빙할 때도 입어봤지만 입고 벗기가 힘들어서 래쉬 티셔츠를 입었다. 갈 때는 옷 안에 반신 수영복을 입고 갔다. 트레일러에 옷가지와 짐, 신발을 보관할 수 있다. 안경 대신 렌즈 꼈다. 



 긴 서핑보드를 끌고 바닷가에 가는데 이것부터 힘들었다. 서핑보드를 끌고 간 다음 모래사장에 앉아 물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물에 들어가기 전 리쉬를 발목에 맨다. 서핑보드 위에 섰을 때 뒤쪽에 가는 발에 맨다. 나는 왼발. 왼발이 뒤로 가면 오른손잡이인가? 맨 처음 레슨을 들었을 땐 오른발이 뒤로 갔는데 두번째 했을 때부턴 왼발을 뒤로 보냈다. 물에 들어가서 바닷물이 허리춤까지 올라오면 서핑보드에 올라타서 엎드린다. 두 발 끝을 세웠을 때 리쉬가 걸린 부분에 닿을 정도로 뒤로 가라는데 이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여간 두 발을 뾰족하게 세우고 팔은 닭날개처럼 접는다. 리시를 맨 발을 접어 두 다리를 4자로 만들고 강사가 보드를 밀며 go를 외친다. 그럼 일어난다. 서핑 보드에 올라간 순간부터 시선은 앞을 향해야 한다. 보통 자기가 어느 한 포인트를 정해서 거기만 본다. 일어나는 과정은 스포츠에서 연속동작이라는 게 그렇듯이 많은 동작이 짧은 시간 내로 이루어진다. 푸쉬업을 하면서 동시에 혹은 아주 빠르게 리쉬를 매지 않은 발을 앞으로 빼고 일어나면서 두 무릎은 굽힌다. 리쉬를 맨 발 쪽의 팔은 뒤로가고 반대쪽 팔은 앞으로 뻗는다. 근데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1시간동안 3번은 서핑했나? 물 드럽게 많이 먹었다. 쿨랑가타 바닷물은 정말 짰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문제는 서핑 보드 위에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리는 서있기 위함이 아니라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다리는 무릎을 굽히는 것만 생각하고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당연히 맘처럼 안된다. 물도 무서워하지 않고 수영도 사랑하니까 세 번이나 서핑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서핑을 처음 성공했을 때, 시작하기 전 긴장된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서핑이 어떨 거라고 생각했냐는 질문에 이것보다 어려울 줄 알았다고 대답한 내 건방진 태도도 한 몫 했겠지. 



 골드코스트는 한국인들도 정말 많이 오는지, 그리고 수영을 못 하는 걸로 유명한지 강사도 그 말을 했다. 한국인 정말 많이 보는데 걔네는 자기가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 한다고 말한다고. 몇 개월 전엔 나도 수영 못 했는데 말이다. 이런 말 말고도 힘들거나 긴장해 보이면 계속 말을 거는데 긴장풀라는 게 아니라 어쩌면 그냥 빨리 서핑보드에 올라타라고 종용하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뭐라더라. 시작하기 전에 해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겠냐고도 물어봤었다. 생각보다 이런 것에 움츠러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물어본 거겠지. 다윈에서 악어하고 같은 강에서 수영했다고 했더니 악어하고 수영도 했으면서 서핑이 긴장된다고 한거냐고도 물어봤다. 그건 그렇네. 다만 둘 중엔 큰 차이가 있다. 서핑하기 전에 긴장된다고 말한 건 진심이었는데 그건 다시 말하지만 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핑하기 전 날엔 두근두근해서 잠도 잘 안 왔다. 서핑은 힘드니까 잘 먹고 가래서 아침부터 닭 허벅지살 두 개 구워먹으면서도 떨렸다. 잘 하고 싶어서.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 메이면 실제로 잘 해내기 위한 단계—서핑이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든든한 아침을 차려 먹고 일찍 나가는 것—에 부실해진다. 생각은 많이 할 수록 독이 된다. 이런 생각은 서핑보드 위에 서서 행동으로 옮기면 바로 잊혀지게 마련이다. 잘 알고 있는데도 생각을 줄이고 행동하는 것은 실천하기 어렵다. 서핑보드 위에서 무릎을 생각보다 많이 굽히고 팔을 올리지 않아야 하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1시간의 서핑레슨을 마치고 느낀 점은 단 하나다. 이걸 어떻게 2시간 동안 하지? 온 몸이 아팠다. 그리고 배고팠다. 또 목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