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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애들레이드

애들레이드 해양 박물관에서는 비스킷을 털어 먹자

by 마리Mary 2018. 9. 26.

남호주 해양 박물관은 포트 애들레이드에 있는데 여기서 산 티켓으로 포트 애들레이드 등대에도 오를 수 있다. 호주대륙은 전면이 바다인 만큼 마리타임 박물관은 호주 많은 도시에 한 개 쯤은 있지만 나는 애들레이드에서만 가봤다. 여기서 봤던 게 너무 많아서 브리즈번이나 시드니에 갔을 때 굳이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참고로, 호주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다. 유러피안들이 신대륙 항해를 할 때 그린란드보다 큰 곳은 대륙, 그보다 작은 곳은 섬이라고 하기로 했고, 호주는 그린란드보다 크기 때문이다.

 

박물관 입장료 국제학생증 할인 가능.

 

1층에는 큰 배 모형이 있는데 배 바깥에는 모래사장도 꾸며놓고 배 위에 올라서 구경할 수 있고 또 아래층으로 내려가 선원들하고 선장이 지내는 공간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배만 전시해놓은 것이 아니라 아래 공간까지 깔끔하게 활용한 것도 좋았는데 박물관 모든 층에 설치된 오디오에서 선명한 항구소리와 파도소리가 계속 들려와 박물관 감상이 더 실감났던 게 감동적이었다. 한때 비틀즈에 빠져서 친구와 듣던 옐로섭머린이 생각나는 공간이었다. 빈 공간에 화물박스를 올려놓는다던지 컨셉이 망가지지 않게 잘 활용했고 막아놓은 공간도 철봉같은 걸 쓰지 않고 섬세하게 밧줄로 막아놓았다.

 

예쁜 배들을 잔뜩 보고왔다. 박물관은 3층짜리 건물인데 온통 배와 배와 배다. 삼각형이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배도 항상 예쁜 삼각형의 균형을 가진다. 기술가정 시간에 다리 구조 말고 배의 구조에 대해 배웠다면 60점이란 점수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배 말고도 승객들이 타던 승객칸을 재현해 놓은 것도 볼만했다. 방 안에 세면대와 있으나 마나한 작은 테이블이 있는 것도, 캐리어들을 침대 아래로 욱여넣은 것도 백패커스의 향취가 났다. 배라는 특성때문에 흔들리니까 2층 침대가 아랫층 침대가 아니라 벽과 연결돼있던 건 신박했다. 해양 박물관이니까, 선원 제복이나 마린 컬러의 스티치 장식품에서부터 서핑보드에 이상한 게임 기계까지 별걸 다 전시해 놨는데 자잘한 건 큰 재미는 없다. 선원들이 매일 썼다는 고래기름 램프나 책, 옷, 짐을 꾸리는 리스트들도 재밌었는데 식량으로 먹었던 비스킷에는 벌레가 많이 꼬여서 먹기 전에 비스킷을 식탁에 탁탁 털어서 먹었어야 했다고 한다. 정말 성가셨겠지만 그와 상관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귀여운 일이다.

 

지역 이동을 배로 하던 시절에 갇혀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충분히 구식이다. 그래서 박물관 색감도 전시품들도 이 분위기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색바랜 지도나 지구본과 나침반같은 것들 말이다. 비스킷을 먹는 방법도 그렇게 먹는 이유조차도 아날로그의 정석이어서, 해양 박물관은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에 자라나 어느 정도는 아날로그를 겪었지만 그렇다고 깡촌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런 아날로그에 느끼는 정체모를 애정은 살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훔쳐보며 생긴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게임 대항해시대를 정말 열심히 했고 영화 중경삼림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같다. 바다를 항해선으로 가로 지르는 것, 90년대 홍콩 뒷골목을 걷는 것 같이, 겪지도 않은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것들이 세상엔 몇 가지 있다. 

 

구식이고, 그래서 낭만적인 모형 배는 하나쯤 방안에 놔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념품 섹션은 작았지만 기념품들이 전부 반짝반짝하게 잘 닦여있었고 박물관에서 본 것들하고 비슷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기념품 가게라는 건 그곳에서의 경험을 마무리짓고 후일에 기념하기 위해 집안 어딘가에 놔두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해야 한다. 그러니 기념품 가게는 전시관으로 취급하며 마땅히 잘 꾸며야 하는 데도 성의없고 평범한 상품들만 늘어놓는 곳들이 너무 많다.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