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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애들레이드

금수저의 수집품을 훔쳐보다 - the David Roche foundation

by 마리Mary 2018. 9. 8.

창문틀부터 심상치 않은 이곳은 the david roche foundation이라는 곳이다. 돈많은 게이 남성 수집가의 집인데 지금은 죽었고, 노스 애들레이드에 있는 집은 하우스 박물관으로 전시되고있다. 집의 오른쪽은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시 내용은 때마다 달라진다. 미술품과 조각품들이 주된 전시품이다.

 

투어는 5분짜리 동영상을 보고 시작한다. 사진은 지팡이와 우산으로 이게 투어시작인데 벌써 미쳤다. 해리포터에나 나올 것 같은, 반지의 제왕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소품으로 말고 누가 저런 걸 쓸까 싶지만 아차 본래 영화라는 것이 현실을 반영한 거였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장식이었다.

 

나도 옛날에 손잡이가 예쁜 우산이 하나 있었다. 손잡이가 스노우볼처럼 돼있어서 안에 별하고 반짝이들이 들어있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포인트였다. 정말 아꼈는데 피아노학원에 깜빡하고 놓고갔을 때 누가 훔쳐갔다. 내가 놓고온거긴 하지만 중간에 비가 오지 않았고 못생긴 우산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점에서 그 우산은 도둑맞은 것이다. 근데 난 케언즈에서 앨리스 스프링스로 갈 때도 케언즈 집에 우산을 놓고와버렸다. 나는 우산을 챙기는게 정말 힘들다. 왜냐하면 우산은 비가 와서 쓰고 왔다가 갈 땐 비가 그쳐서 우산을 완전히 까먹기 때문이다. 잘 챙겨오는 사람들이 신기한 거라고 항상 생각한다.

 

the David Roche foundation museum guided tour, 20호주달러. 개인 투어는 불가능하고 가이드 투어만 가능하다.

 

이게 우산 꽂이다. 이런걸 우산꽂이로 썼다고 한다. 초입부터 심상치 않은 이곳은 벌써부터 놀라면 섭했다.

 

예전엔 박물관이 아니라 집이었다는 게, 생각할 수록 놀라운 곳이다. 한 집에 시계만 13개가 있다. 시계도 사진에 있는 저런 평범한 시계부터, 시계로 만들었지만 이걸로 시간은 보기 힘들게 만든 장식품으로서의 시계도 많았다. 어딜 찍어도 고급이어서 이날 사진 전부를 올리고 싶다. 가타부타 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어느 파란색도 아무거나 쓰지 않은 곳이었다.

 

저 파란 방 다음엔 침실쪽으로 가는 도중 찍은 복도의 사진이다. 이런 곳에서 내맘대로 사는 기분은 어떨까. 이 곳은 가이드투어 말고는 개인관람이 되지 않는다. 상당히 콧대높게 구는 곳이었다. 이런 박물관 감상은 정말 느리게 천천히 천장 장식부터 바닥재까지 보는 걸 좋아하고, 투어로 가면 시간도 제한적이고 사람이 나오지 않게 사진 찍기가 불편해서 가이드투어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분이 엄청나게 나빴음에도, 오죽하면 그럴 것인가 하는 마음에 기대를 하고 투어를 예약했다. 헛되지 않은 17달러(학생할인)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화장실 조명이다. 사실 집안의 모든 조명이 이런 샹들리에라고 보는 것이 무방했다. 화장실 구석엔 다비드상 같은 게 있고 벽면엔 로마 목욕탕이 그려져있었다.

 

이 남성은, 이런 집을 손수 생각하고 꾸몄단 걸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정말 까탈스러운 클라이언트였다. 저 커텐 색을 주문할 때 저 탁자 위의 나뭇잎의 뒷면을 보여주면서 딱 이 색으로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돈만 아니었으면 정말 크게 맞았을 것만같은 클라이언트.

 

에어즈 하우스만 갔을 때에도 감탄 밖에 안 했었는데, 바늘의 끝에 달린 장식들과 벽난로 위에 놓인 유리 촛대 같은 것들을 한 시간 넘게 보고있자니 점점 객관적인 시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살면서 별로 손댈 일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을 이리저리 평가하는 것도 상당히 재밌었다. 아이러브커피에 미쳐서 카페 꾸밀 때가 생각나면서 내가 핸드폰 모니터로 깔짝대고 있을 때 얘는 나뭇잎 뒷면 색의 커튼을 주문제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더 신이났다.

 

돈으로 이런 장식품들을 긁어모으고 주문했으면서, 죽어서까지도 명당 20달러씩 받으며 돈을 벌고 있으니, '뭔가 예쁜 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참 큰 것이다. 집에 장식품을 들이다 들이다 모자라 집 자체가 장식장이, 장식품이 되어버린 곳. 집 한 켠에 좋은 장식장과 장식품을 진열해놓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집 전체를 장식장으로 쓰는 건 상당히 소모적인 동시에 참 멋진 일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아마 그럴 돈으로 집을 여러 개 사서 굴린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았던 걸까?

 

명품 중의 명품의 홍수 속에서 점차 차분함을 되찾았다가도 감탄할 수 밖에 없던 지점은 접시 장식품이었다. 그 접시는 애초에 식기로 쓰는 접시가 아닌 장식품으로서의 접시였다. 접시 장식품은 거울의 앞에 놓여있었다. 거울 앞에 거치대를 두고 세워 뒀을 때, 거울에 비칠 접시의 뒷면까지 고려한 장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존재한다는 것을 이날 처음 알았다. 

 

이 빨간 색도 어떤 빨강을 쓸까 엄청 고민했을거다. 여느 방도 전부 예뻤지만 이 복도가 가장 예뻤으니 사진을 또 올려본다. 복도는 사람이 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고 집안의 첫인상과 다름없을테니 유난히 공들여 꾸몄을거라고 생각한다. 자잘한 장식품 말고도 액자의 조각이나 색감의 조합, 공간의 활용이 멋진 집이었다. 뜯어보며 공부할 수 있다면 그럴 거리가 충분히 차고 넘치는 곳일 것 같다. 수집품 말고도 인테리어를 오목조목 뜯어보는 맛이 있다. 아무렴 나뭇잎 뒷면 색상의 커튼을 주문하는 남자가 꾸민 집인데 그러지 않을 리가 없긴 하다.

 

독수리가 조각된 의자 손잡이다. 이런 디테일들이 너무 골져스해서 내가 그렇게도 사랑해 마지않는 샹들리에는 별로 찍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큰 샹들리에가 평범해보이는 지경이었다.

 

마지막인 주방이다. 지금이야 박물관으로 개방을 했으니 더 그렇지만, 예전에도 어차피 주방을 가장한 접시 전시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도록 귀엽고 아기자기한 접시들이 지천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집 하나를 구경했는데 지쳤다기 보다는 좀 더 보고싶다는 마음이 컸다.

 

입구에는 조각상들이 전시돼있었다. 집 밖에 나서서도 놓치지 말라고 배치해놓은 조각상들까지 배부르게 잘 봤다. 그리고 이제 웬만한 고급품에는 감탄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