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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말레이시아

망고스틴과 연애할 수 있을까 - 쿠알라룸푸르 센트럴 마켓

by 마리Mary 2019. 9. 17.

동남아로 떠나기 3일 전, 호바트의 그 끔찍했던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호바트 항구의 기념품 가게에서 호주 동물들이 그려진 플라스틱 그릇을 하나 샀다. 동남아라는 곳에서 먹고 쉴 계획이었지만 그릇이 구비되어있는 호텔이나 에어비엔비에 갈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 집에서 귀여운 기념품 노릇을 하고 있는 이 그릇에 처음 담긴 것은 람부탄이었고 두번째는 꼬치요리였고 세번째는 망고스틴이었다. 람부탄은 싼 게 있고 비싼 게 있는데 비싼 건 안 사봐서 모르겠지만, 싼 건 속껍질이 알맹이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먹기 불편했고 무엇보다 별 맛이 없었다. 꼬치요리는 너무 맛있었지만 바가지를 썼기 때문에 두 번 먹지는 않았다. 망고스틴은 지나치게 맛있어서 한국에 돌아와서 비싼 가격을 주고 맛보기까지 했다. 망고스틴의 겉모습은 이게 찌꺼기인지 과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양이며 색이 괴상하다. 게다가 먹으려면 손가락으로 눌러 두꺼운 껍질을 푹 까야하는데 손가락에 시꺼먼 물이 들고 손가락 피부가 거칠거칠해지고 비누를 많이 쓴 피부처럼 뽀뜩뽀뜩해진다. 이 빨간 과즙은 옷에 묻었을 때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니 조심. 심지어 알맹이는 마늘처럼 생겼다. 게다가 식감은 백숙에서 푹 익은 통마늘 느낌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상의 이상의 맛을 보여드립니다. 지금 바로 드셔보세요.

 

말레이시아에서 머물던 3일 내내 이 망고스틴을 먹었는데 모두 쿠알라룸푸르 센트럴 마켓의 과일노점상 아저씨에게서 샀다. 왜냐하면 그 근처에 과일파는 곳이 어디인지 몰랐으니까. 마지막 날에는 망고도 사먹었었다. 이 과일노점상 아저씨는 호텔체크인 이후로 처음 의사소통한 말레이시안으로, 처음 망고스틴을 샀을 땐 절반 또는 1/3이 썩은 걸 주더니(망고스틴이 썩었으면 눌렀을 때 딱딱하다.) 두 번째 가니까 너 한국인이지? 하는 인삿말을 건넸고 망고스틴은 한 두 개 빼고 멀쩡했다. 세 번째 갔을 때에는 아는 체를 하며, 그 아저씨의 과일판매에 대해 의심을 품고 내가 어떻게 그 과일이 맛있는 줄 아냐는 서양인 관광객들에게 나를 이용해 자기 신용도를 높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서양인들은 나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던걸?

 

람부탄 10링깃, 망고 20링깃, 망고스틴 25링깃. 1링깃은 약 300원.

 

이 과일가게 아저씨와 망고스틴 얘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쿠알라룸푸르가 어딘지보다 더 먼저 급하게 써야 했다. 이제 쿠알라룸푸르가 어딘지 알아보자. 말레이시아로 관광을 간다 하면 보통 두가지 중에 하나인데, 하나는 코타키나발루 라는 전형적인 휴양지이고, 하나는 이곳 쿠알라룸푸르 라는 도시이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는 보통 KL로 줄여 말하고 위 사진의 유명한 랜드마크인 쌍둥이 빌딩,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있는 곳이다. 면적은 약 250제곱킬로미터로 서울이 600제곱킬로미터인 걸 생각하면 참 작은 곳이다. 인구는 백팔십만 정도. 참고로 서울이 구백만, 뉴욕은 팔백만 정도 된다. 이 작은 도시의 중심부는 각종 럭셔리 백화점이 몰려있는 부킷빈땅BUKIT BINTANG이다. 내가 머무른 곳은 거기서 MSBK트레인으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센트럴 마켓 앞이었다. 도대체 왜? 라고 묻는다면 그저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하지만 조용하고 한국어도 들리지 않고 매우 저렴한 가격에 매우 상냥하고 깨끗하고 귀여운 도어맨이 있는 숙소, 바로 근처에 망고스틴이 맛있는 과일노점상이 있어 이 지역과 사랑에 빠졌으니 꽤 낭만적인 우연이었다.

 

트레인 편도, 1.3링깃.

 

이렇게 이 말레이시아라는 곳이 꽤 멋진 곳이란 걸 알았지만 반딧불투어를 가고 마트에 들리고 쌍둥이 빌딩에서 인증샷을 찍는 건 여전히 끌리지 않아서 하지 않았다. 여행할 때 무언가가 딱히 끌리지 않을 때는, 그게 비록 남들이 다 하는 것일지라도 과감히 버리는 결단이 중요했다. 자유여행에서는 숙소를 나가는 게 무서워 침대에만 누워있는 것도, 해뜨기 전 밖에 나가 해가 지고 들어와 다음 날 다리가 퉁퉁 붓는 것도 전부 내 책임이다. 또 이 점은 가이드 투어 할 것이 별로 없는, 도시를 여행한다면 더더욱 선명해진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돈을 쓰는 것은 일종의 게임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가이드 투어에 50달러를 지불하는 건 두 발로 일어나 어디를 갈 지 정하고 어떻게 갈 지 10분 동안 알아보는 것보다 쉽다. 난 대부분의 순간에 반응적으로 대응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외로 아주 결단력있었다. 내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종일 호스텔 친구들과 떠드는 날도 많았다. 오세아니아-동남아 여행에서 분명 멋진 환경이나 각종 경험도 좋았다. 하지만 그간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 내가 속한 사회 내에서의 약속 또는 규칙에 불과했으며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걸 마주치는 순간이 더 충격이었다. 그리고 여행 순간순간에 내 모습이 낯설 때가 많았다는 건 더더욱 쇼크였다. 나는 나에 대해 생각보다 잘 모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남들 다 하는 거 안하고 뭘 했을까? 내가 보고 싶은 걸 보러갔다. 이때 동남아 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물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봐온 성당들과 각종 건물들이, 퍼스에서 성 마리 성당은 제외하고, 이제 정말 지겨워지기 시작했었다. 색다른 풍경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동양의 사원이나 절같은 것들이 보고싶은 걸 넘어서서 기대가 됐다. 빨리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동남아 사원 투어로 처음 방문한 곳은 숙소 앞 힌두교 작은 사원인 sri mahamariammam temple이었다. 입장료가 얼마간 있었고 입장료를 내는 곳에서 신발을 맡기고 들어가야 했다. 긴 바지를 입고 어깨도 드러내지 않는다. 사원은 무척 조용했고 엄청나게 이국적이었다. 천수보살이 생각나는 팔 여러 개 달린 (아마도)신들이 잔뜩 조각된 입구부터 뭔가 엄청나게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절을 갔을 때 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였지만 완전히 달랐다. 휘황찬란까진 아니지만 뭔가 그래도 꽤 달린 샹들리에같은 조명, 금색 기둥, 요상한 그림이 그려진 천장, 심하게 다채로운 조각상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치들이 넌 여기 왜 왔니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와봤는데. 뭐지. 생각보다 좋네.

 

신발 보관료, 0.2링깃.

 

분명 다른 게 더 많았을 테지만, 호바트-말레이시아 비행기표를 끊고 말레이시아-태국 비행기표를 끊었을 때는 동남아가 이렇게 멋진 곳일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짧게 머무른 말레이시아에서 구경한 사원은 이 작은 힌두사원 하나가 끝이었다. 이걸 봤을 때만 해도 난 실감이 잘 나지 않아 얼떨떨했던 것 같다. 내가 앞으로 보게 될 것들이 얼마나 멋진 것들인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