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같은 데이투어인데도 릿치필드보다 세 배는 비쌌던 카카두 국립투어다. 카카두 국립공원이 훨씬 크고 또 릿치필드 국립공원보다 거리가 멀다. 카카두 국립공원은 7월부터 9월까지가 건기라 이때 방문객이 많다. 기온도 가장 낮은 시기로 21도에서 33도정도다. 카카두 투어를 신청해도 카카두 국립공원 패스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
카카두 투어, 260호주달러, 카카두 국립공원 입장료 별도.
카카두 국립공원 입장료, 40호주달러, 7일간 유효.

처음 가는 건 유비르Ubirr인데, 애보리진들의 벽화를 볼 수 있다. 유비르는 정말 조그만 공원같은 곳으로 전부 둘러 보는 데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야 고분 벽화나 무용총 벽화 고구려 벽화 무슨 벽화 이런 벽화 저런 벽화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호주에서 애보리진 벽화를 보고 있다니. 그때 책을 보며 실제로 봐도 이렇게 선명한가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 그림 속 벽화처럼 선명했다. 마치 후대에 새빨간 물감으로 덧그린 그림처럼. 주로 고대인들의 물고기나 왈라비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일부 벽화에서는 애보리진 사람들이 처음 외부인과 만났을 때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contact art라고 부르는데 셔츠와 부츠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백인 남자 그림은 추정되길 초기 버팔로 사냥꾼이라고 한다.

이런 벽화들을 육안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어떤 것들은 너무 높은 곳에 그려져 있거나 바위가 끊어져 뭘 그린 건지 잘 찾지 못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벽화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 뭐가 있고 어떤 벽화인지 설명하는 look up 표지판들이 세워져있어서 혼자서 구경해도 놓칠 걱정은 없다. 제일 신기했던 건 타즈매니아 타이거라고 불리는 thylacine를 그린 벽화였다. 중간이 잘려서 꼬리랑 윗통만 남아있었다. 이 타즈매니아 타이거는 본국에서 2000~3000년 전에 멸종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평지에 있는 벽화 구경을 마치면 바위산을 오르다가 절반은 동굴같은 곳에 있는 벽화를 또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가장 아이코닉한 벽화인 손도장 벽화를 볼 수 있다.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갈 때는 계단이나 안전봉이 없어서 살 안 째게 조심해야 한다.


유비르의 벽화보다 정상뷰가 훨씬 좋았다. 햇빛도 엄청 세고 바람도 엄청 불었지만 올라가면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평원이 있다. 드론뷰로 보여주는, 사슴들이 달리는 그 초원들. 아니면 반지의 제왕에서 모든 종족들이 싸움붙는 그 평원들이 마구마구 생각나는 곳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유비르 입구 옆에 있는 큰 탁자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비싼 투어여서 점심식사는 로스트 치킨에 퀴노아 샐러드 외 2종까지 데이투어의 점심인데도 구성 좋고 양도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땐 이 가이드가 타이어를 못 갈아서 몇시간 늦게 집에 오고 늦잠자서 다음날 공항셔틀을 놓치고 택시를 탈 줄은 몰랐다. 근데 여전히 다윈이 가장 좋다. 시계도 잃어버리고 예약했던 셔틀비도 날리고 택시값까지 냈는데도 가장 좋다. 쌔파란 하늘은 오려서 수첩에 끼우고 건조한 공기는 가방에 담아서 가져왔어야 했다.

유비르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엔 파충류 중에서도 제일 멋있는 악어 그것도 야생 악어떼를 볼 수 있는 사파리를 하러 강으로 떠난다. 내 카카두 투어의 목적이었다. 파충류 눈엔 보석이 있다.
처음 배에 탔을 때는 늦게 탔지만 다행히도 바깥쪽 좌석에 앉았다. 그래도 배의 뒤쪽에 타서 악어를 잘 볼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악어를 보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다. 가자마자 보였다. 악어들이 살아서 활기차게 움직이고 하품하고 물로 미끄러져 들어가 수영한다. 동물원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악어들마저도 좋아했기에 여기서는 소름이 돋을만큼 좋았다. 로트네스트섬의 쿼카같은 야생악어가 여기저기에 널부러져있다.
여기서 악어를 너무 많이 봐서 퍼스동물원에 갔을 때, 일부러 크로커다일 톡 시간에 맞춰 악어우리에 갔는데도 악어를 구경하지 않았다. 이날 악어를 너무 많이 봐서 안봤다기 보다는, 동물원에 누워있는 그 힘없는 악어들을 보는게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꼬리를 흔들고 바닷속으로 미끄러지며 사라지는 악어들을 보다가 동물원 악어를 보고 있으니 그렇게 좋아했던 동물원이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좋고 멋있고 크고 종류가 많아도 동물원이란 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그래서 진심을 다해서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졌다.

이날만 해도 너무 많이 봐서 나중엔 사진도 잘 찍지 않았다.

악어 사파리는 악어를 좋아한다면 꼭 타야한다. 악어가 많기도 하지만 강의 폭이 넓은 편이 아니라서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악어가 당장 달려들면 잡아먹힐 정도는 된다. 떠다니던 강 아래에도 악어가 잔뜩 있었겠지. 보트에 탈 때 일찍 줄을 서서 강가 쪽, 그리고 앞 쪽 좌석에 앉는다. 앞 좌석이란 운전석의 정 반대 방향을 말한다. 악어는 그냥 많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악어도 멋있었지만 보트를 타고 갈수록 강이 계속 넓어지고 물도 달라지는데 이 풍경도 정말 멋지다. 중간에 여기서 내려서 애보리진 가이드가 창 던지는 것도 본다. 가이드가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 옆의 이파리도 따다가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라고 한다. 또 창 종류도 구분해서 설명해주는데 나름 재밌다.

이 투어는 처음 예약했을 때 다윈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전날로 투어를 예약했었다. 그런데 전화가 와서는 그 다음날, 그러니까 다윈을 떠나기 전 날만 투어가 가능하다길래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투어날 투어를 끝내고 다윈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타이어가 터졌다. 근데 가이드가 타이어를 못 갈았다. 물론 타이어를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가이드 씩이나 되면서 말이다. 심지어 여긴 핸드폰이 안 터져서 누굴 부르지도 못했다. 지나가던 차량을 가이드가 타고 가서 장비를 가져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느라 차 안에서 길 위에서 몇 시간을 허비했다. 집에 도착하니 거의 8시가 넘은 시간. 그래서 다음 날 예약했던 셔틀 놓치고 택시탔다. 셔틀비도 나가고 택시비도 나가고 마무리가 개거지같았던 다윈이었다. 지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셔틀비도 물어내고 택시비도 물어내라고 했을텐데 이땐 너무 전투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악어사파리는 좋았다. 너무 좋았다. 평생 볼 악어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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