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돈을 떠나기 전날엔 과자를 사먹었다. 비싼지 싼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물은 비싸다고 느꼈었다. 물론 한국의 삼다수 기준으로. 국경지역이라서 그런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시판돈에서는 달러도 잘 통용이 되니 낍(라오스 화폐)이 다 떨어졌다면 달러를 쓸 수 있다.
시판돈에서 폭포 좀 보겠다고, 해먹에 누워있겠다고 그 난리를 친 게 사흘전이고, 이제 다음날이면 힘들게 온 이곳을 떠나야 한다. 후... 힘들게 왔으니 나가는 것도 힘들 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국경을 넘는다.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향할 예정이다. 우선 반나까상으로 출발이다. 숙소에서 예약한 배는 8시였으나 8시 반에 출발하게 되었다. 전날 굶어(나는 항상 지역이동 전날과 당일은 굶게 되는 것 같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겨우 30분에도 다시 화가 슬슬 올라왔다. 하지만 벌써부터 분노할 수는 없다. 기운빼기엔 아직 갈길이 너무나도 멀다.
반나까상으로의 뱃삯, 23미국달러.
만남의 광장같이 느껴지는 반나까상도 그립다. 그 번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그러나 모든 것이 정해져있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그곳의 질서를 마음속에 그려본다.
반나까상에 도착하여 10시까지, 국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귀한 버스가 몇십명의 여행객들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캄보디아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곳은 만낍샌드위치 메뉴판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정수기가 있었다. 처음엔 믿지 못했다. 정수기가 있는 건 뭐 있다 치더라도 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있었다! 어제 샀던 생수병과 다른 남은 생수병이 있어 목을 축인 다음 또 물을 받아놓을 수 있었다. 심지어 시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출발이 좋다.
국경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반나까상으로 출발할 때 받았던 티켓을 바꿨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국경버스를 탈 때는 씨엠립에 가는 사람들이 먼저 타게 된다.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뒀으나 이게 사람인 것 마냥 감히 자리에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리를 정리하느라 올려뒀을 뿐이었고, 당연히 동남아의 교통수단은 단 하나의 빈자리도 용납하지 않는다. 한 남자애가 앉아도 되냐길래 가방을 치웠다. 중국남자애였고 여행자들이 하듯 서로 여행 얘기를 시작했다. 어디로 가니? 마치 갓 엄마아빠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마법의 문장, 몇 개월이에요?와 비슷한 질문이다. 그 남자앤 중국에서 육로로 여행을 막 시작했다고 했다. 첫 해외여행, 가족과 함께. 첫 해외여행이 라오스라. 좀 아깝다고 생각했고, 다시 생각하니 아깝다기보다 많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서구권 유명 관광국가들에 비하면 이것저것 없거나 안되는 시스템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동남아를 늦게 접해서 그런지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게다가 엄마아빠와 하는 해외여행은 기본적으로 효도여행이라고 생각하라던데. 나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데 엄마아빠를 보필까지 해야한다니. 너 참 대단하다. 한마디 하니 남자애는 혼자 여행하다니 너야말로 참 대단하다고 답한다. 이러나 저러나, 여행은 신나고 즐거운 것이다.
캄보디아는 어디를 갈 계획이냐고 물어보기에 아직은 계획이 없다 하니, 남자앤 자기 론리플래닛을 펼쳐들었다. 서양인이면 많이들 들고다니지만 여지껏 만난 동양인들은 단 한 명도 론리플래닛을 실물로 들고다니지 않던데 이 남자앤 들고있었다. 그것도 약간은 모서리가 닳은. 내게 캄보디아 지도를 펼치며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한 남자애는 끄라체로 민물돌고래를 보러간다고 했다. 민물돌고래보다는 그 지도에 흥미가 생겨 함께 지도를 보며 캄보디아 지역을 찾아봤다. 내가 결정한 곳은 몬둘끼리였다. 남자애는 이상하단 눈으로 쳐다봤지만, 코끼리가 있고 폭포가 있대서.
반나까상이 이미 거의 국경에 가까우니 국경에 도착하는 것은 30분이면 충분했다. 이제 나름 악명있는 라오스 출국과 캄보디아 입국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사기를 당한다.
정말 황당한 경험이었다. 라오스 출국장에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당당하게 캄보디아 비자신청서를 들고, 테이블까지 멀쩡히 두고 앉아있어서, 아하! 여기다 주는거구나!하고 여권을 줬더니만 38달러라니. 캄보디아는 e비자가 더 비싸던데 그건 도착비자가 더 삥땅치기 좋아서였을까? 라오스 출국장에서 준 2달러까지 40달러나 쓰다니. 나는 그저 하루 굶고 하루 먹는 가난한 여행자일 뿐인데. 피차 서로 가난한 입장에 뜯어먹기 있어? 말 그대로 내 피와 살같은 40달러를 나는 잃었다. 눈뜨고 코베이는 경험을 40달러 주고 나는 한 것이다. 엄마아빠! 서울에서 눈뜨고 코베이는 게 아니었어요. 그건 라오스 출국장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전날 거의 굶은 나는 싸울 기력이 아까부터 없었다. 그래서 라오스 출국장 직원에게 반항의 기운 하나없이 2달러를 건넨 것이었다. 2달러면 잃어버릴 만 하잖아. 그런데 38달러까지 잃게 되다니. 물론 실랑이할 생각은 없다. 너 가져라. 이렇게 된 이상 너희는 부자가 되어라. 내 38달러와 함께. 잘 먹고 잘 살아줘라.
다시 간다면 그 테이블에는 눈길도 주지않고 캄보디아 입국장으로 걸어갈텐데.
캄보디아 입국장으로 걸어가는 길은 또 왜이리 긴지 모른다. 그늘 하나없이. 물론 국경지역이니까 아무것도 없는 걸 이해는 하지만, 버스에 두고 온 우산이 생각났다. 가져올걸. 짐은 버스에 두고 내리라고 했던 것 같지만 다시 간다면 우산을 슬쩍 챙겨볼 것 같다. 캄보디아 입국장 앞에서 같이 사기당한 애들끼리 앉아있었다. 입국심사줄 안 서있고 그늘에 앉아있는 값이라고 생각하자! 그늘에 있어봤자 부채를 써봤자 덥지만 말이지. 좋게 좋게 생각하자. 전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말이지. 근데 또 도장 찍는 입국수속은 어차피 해야하네? 그 줄도 엄청 기네? 출발이 좋지 않다.
출국장 직원 용돈, 2달러.
사기 경험값, 38달러.
지금 생각해보면 출국장 직원 용돈을 달라고 할 때 왜?만 반복해볼걸 그랬다. 왜? 내 2달러는 왜 달라하는데? 왜??응?? 그리고 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기를 왜 당했는가 싶다. 라오스 출국장에 있는 캄보디아 비자 신청 담당 직원이라니. 이 무슨 한국 출국장에 있는 일본 비자 신청 담당 사무소같은 소리람.
캄보디아 입국을 시작한 건 열 시 반, 마친 건 열두 시 반. 두 시간 동안 사기를 당했다는 좌절감과 그늘에 있어도 더운 날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이미 일어난 상황은 어쩔 수 없으니 빨리 정신을 차리는 게 중요하다는 건 긴 여행에서 습득한 태도 중 하나다. 그래도, 여권 속 캄보디아의 비자는 신기했고 버스여행은 나름 즐거웠다. 일단 그 고통 속에서 버스에 타니 물론 타는 듯 목막히고 더웠지만 앉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버스 밖으로 보이는 붉은 빛의 황무지도 새롭고 중간중간 보이는 사람들이 부산스러워 그게 나름의 즐거움이 되었다.
두 시에 스텅트렝, 프놈펜, 크라체에 가는 애들이 내렸고 나는 그 중국남자애와 인사했다. 중간에 주유소에서 멈추는데 가게가 있어 다른 애들은 뭔가를 열심히 사먹었다. 나는 돈도 없고, 화장실에 가기도 싫어서 내리 굶었다. 세 시 반에 한 시간 정도 자다가 문득 깼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공복 18시간 째, 살짝 미쳐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잠들고 깨고, 메콩강을 건너고, 잠들고 깼다.
저녁 여덟 시 반, 밖은 이미 어둡고 야시장이 한창이었고 내리자마자 툭툭 기사들이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다리 쪽이 왜이렇게 휑하지했더니 세상에. 바지가 찢어졌다. 그것도 궁디쪽까지. 나한테 왜 그러는건데? 언제 찢어진거야? 이거 실환가? 실화였다. 아무리 여기가 덥다지만 이렇게 시원할 거 까진 없었는데. 게다가 이미 밤이라 추운데. 그래도 사각빤쓰를 입어 다행이었다. 그나마 덜 민망하고 덜 추웠다. 서둘러 가디건을 꺼내 둘렀다. 혼자 있고 싶으니 날 내비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내 바지를 봤는지 둘다인지 툭툭 기사들은 나한테 별로 말도 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푼도 없어보였던 걸까 싶다. 그리하여 혼자 호스텔로 걷기 시작했는데 은근히 멀다. 춥고, 주변은 새까맣고, 사람도 안보이고, 짐은 무겁고, 핸드폰배터리는 간신히 숨만 붙들고 있고, 나는 피곤하며, 마지막 식사로부터 24시간이 넘었고, 내 바지는 찢어졌다. 시작이 좋지 않다.
바지는 호스텔에 도착하고 씻은 다음 휴지통에 폐기했다. 호바트의 호스텔에서 누가 나눔한 걸 얻어입고 말레이시아부터 내 피부처럼 여겼던 바지였는데 너 어떻게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할 수 있어. 이건 배신이라고. 그리고 그 바지의 주머니엔 8시간 동안의 버스여행을 책임졌던 이어폰이 들어있었다. 시작이 역시 좋지 않다.
좋은 점이라면,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숙소 옆 세븐일레븐에서 산 파인애플 잼이 샌드된 비스킷이 참 맛있었다는 점. 나도 모르게 핸드폰으로 찍어뒀다. 시판돈에서의 평화로운 나날들이 벌써 꿈결이다.
생수 1.5리터, 파인애플잼 비스킷, 리치주스, 콘아이스크림, 3달러.
그래도 물가는 여전히 감동이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도저히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닐 기력이 없었다. 다 부서져가는 아이폰5를 들고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가 도저히 더 멀리 나갈 체력이 안돼서 아무 곳에 들어가 쌀국수를 먹었다. 현지인이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에 내가 들어가면 주인은 보통 굉장히 생경한 표정을 짓지만 쫓아내지는 않는다. 대신 나름 조심스럽게 주문을 받는데 내가 맞게 시키는 건지 좀 의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의심은 합리적인 것이 나도 내가 뭘 시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당에서 메뉴는 항상 정해져있었고, 그곳은 쌀국수였다. 팍세에서 먹은 까오삐약과 친절했던 주인이 생각났다. 차이점이라면 여기선 닭고기 할거니 어쩔거니를 물었고 상추같은 잎채소가 국물에 적셔 같이 나왔다는 것.
거의 36시간 만의 식사에 그나마 정신이 들었고 내가 아직 밖으로 나다닐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알아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마침 호스텔에 멋진 수영장이 있었고 그 옆에 해먹이 있었다. 수영장에 몸을 잠깐 적시고 해먹에 누워 시판돈에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그제서야 어딘가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에 드디어 툭툭을 불러 씨엠립 시내(추정)로 나갔다. 나름 유명한 듯한 여행객 대상의 식당에서 붉은 나무 개미와 소고기를 볶은 개미요리와 망고주스를 먹었다. 개미요리는 다윈에서 먹은 생개미만큼 톡톡 터지지는 않았다. 그냥 이래저래 평범한 맛이었다. 밥과 함께 나왔고,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보니 개미를 두 번이나 먹어보다니. 별 경험을 다 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따라 산책하는 겸, 핸드폰 용품 매장을 찾아 이어폰을 샀다. 대뜸 골라주기에 제일 싼거니? 물어보자 그렇다고 했다. 하긴, 제일 싼 걸 골라줬겠구나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다행히 이 이어폰은 잊어버리지 않고 지금도 잘 쓰고있다. 고장도 나지 않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수영하고 해먹에서 빈둥댔다. 씨엠립에서는 앙코르와트를 보러가지만 앙코르와트에 별 관심이 없고, 애초에 씨엠립은 우선 가장 유명한 도시에 가자는 생각으로 정한 도착지였고, 중국남자애의 론리플래닛에서 본 후 몬둘끼리에 가기로 정해 몬둘끼리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캄보디아에서는 북미버스(bookmebus)라는 사이트에서 버스 예약을 쉽게 할 수 있어 편했다. 물론 버스가 아니고 승합차다.
참 미안한 얘기인데, 그간 너무 피곤한데 간만에 식사를 하고 수영하며 오랜만에 여유를 찾은 다음 날 몬둘끼리로 출발하려다보니 늦잠을 잤다. 너무 피곤해서 전날 짐도 정리해놓지 못해 허둥지둥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하고 택시를 잡아 승합차를 타는 곳에 부랴부랴 도착했는데, 티켓을 보더니 여기가 아니라는 거다. 그럼 어딘데?! 저기 앞에. 갈수록 '저기 앞에'라는 표현이 익숙해지고 있다. 저기 앞으로 걷다보니 어떤 아저씨 둘이 나를 보더니 '넌 여기다'라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한 명이 다가와 몬둘끼리? 하는데 예쓰!!!!!늦어서 너무 쏘리!!!!!!!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내 짐을 여기저기 구겨넣느라 더 시간이 늦춰졌다. 시판돈을 출발한 이후부터 계속, 시작이 좋지 않다.
12시에 캄퐁참 근처의 길거리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여기서도 물이 아닌 차를 줘서 참 좋았다. 지쳤을 때 한 식사라서 그런가 너무 맛있고 간도 완벽하고 차도 시원해서 너무 좋았다. 시작이 아주 조금 좋아지고 있었다.
몬둘끼리는 마을에 가까운 정말 작은 도시다. 중앙 도로엔 저런 요상한 조각상이 있다. 나름의 랜드마크인 걸까.
그리고, 표지판에 의하면 소가 다니는 것 같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리하여. 다시 어딘가에 도착했다. 이 모든 것이 나흘 만에 일어났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쓴 글이 2020년 3월이니 1년하고도 반반년만에 글을 올린다. 어차피 여행도 못하고, 백신 맞으려면 한참이고,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안심하고 나다녀도 안 되는 듯 하고, 여행이 가능하게 된대도 그동안 여행을 못간 사람들이 잔뜩 몰릴테니 그게 조금 사그러들 1~2년을 추가하면 앞으로 최소 5년 동안은 여행을 못가지 싶다. 글을 읽는 사람도 그러는가는 잘 모르겠으나, 글을 쓰는 나는 실제로 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와 추억을 복기하기에, 여행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별로 쓰고싶지 않았는데 기다리는 독자(아빠. 엄마는 안 기다린다.)도 있고, 1년동안 이 블로그에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들어오는 것도 신기하고해서(스웨디시 젤리로 정말 꾸준히도 들어온다. 스웨디시 젤리 맛있다.) 써봤다. 글쓰는 것도 여행사진을 들추고 보정하고 사이즈를 조정하는 것도 늙고 지치고 무거워 꼭 나같은 맥북의 팬이 시끄럽게 돌아가는 것도 다 너무나 오랜만이다. 여행이 하고싶다. 정말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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