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텅트렝을 통해 라오스에서 캄보디아로 입국한 후 씨엠립에 들렸다가 다시 몬둘끼리로 향한 게 캄보디아에 입국하고 사흘만이다. 캄보디아 지도를 보면 정말 비효율적인 동선이지만 캄보디아에 입국할 때 별다른 계획없이 가장 유명한 도시인 씨엠립을 목적지로 정한 거라서 그렇다. 씨엠립에는 앙코르와트가, 프놈펜에는 킬링필드 중 하나가 있어 캄보디아에서 유명한 도시다. 몬둘끼리로 다시 행선지를 바꾼 건 코끼리와 폭포가 있다고 해서였다. 캄보디아의 휴양지로 불리는 시하누크빌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만난 여행자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어 우선 프놈펜에 가서 나머지 일정을 결정하기로 했다.
몬둘끼리에는 몬둘끼리 프로젝트라는 NGO가 있다. 코끼리 투어로 얻은 수익은 코끼리 보호구역의 숲을 정비하거나, 농장일이나 코끼리 타기로 학대받는 코끼리들을 사거나 대여하는 데에 쓰인다. 나는 코끼리 타기가 비윤리적 소비라서 하지 않은 건 아니고, 그저 이쪽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몬둘끼리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보는 코끼리들은 다들 지쳐있어서 맘도 별로 좋지 않고.
투어는 8시 20분에 차량이 사람들을 픽업하며 시작된다. 작은 동네라서 픽업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내 이름이 없다고 해서 이메일을 보여주고 탔는데, 오피스에 도착하고 보니 내가 날짜를 착각해서 잘못 예약한 것이다. 이럴수가... 캄보디아에 입국하고 여전히, 출발이 좋지 않다. 가이드에게 날짜를 착각했는데 오늘 투어를 할 수는 없을까 물으니 잠시 뭘 보고 오더니 된다고 했다. 얼마나 고맙던지.
4마리의 코끼리가 있는 보호구역으로 가는 데에 트럭을 탄다. 트럭 앞에 타는 건 아니고, 조수석에 타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트럭 뒤에 짐짝처럼 실린다. 살면서 트럭 뒤에 타본 건 처음이었는데 그렇게도 트럭 뒤가 흔들리고 궁디가 아픈지는 미처 몰랐다. 포장도로가 아니라서 흔들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엄청난 흙먼지를 직빵으로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란. 보호구역에 도착 후 코끼리는 10시부터 보기 시작했다.
코끼리 보호구역 1일 투어, 50미국달러. 오피스에서 현금으로 지불했다.
코끼리들은 이곳에서 내가 보기엔 식사 빼고는 나름 야생의 상황에서 사는 것 같았다. 숲도 넓어보였고, 사이 좋은 코끼리들도 있고. 이 보호구역엔 코끼리 4마리가 사는데 어린 코끼리들이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아 그 코끼리들 위주로 투어를 했다. 사람하고 친하지 않은 코끼리는 멀리서라도 잠깐 볼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든 말든 코끼리는 귀엽다.
코끼리는 정말정말 귀여웠지만 코끼리가 내 눈앞까지 성큼성큼 왔을 때는 좀 쫄았다. 새삼 코끼리는 개멋지고 개큰 동물이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코끼리란 게 초식동물이고, 위협당하면 당연히 인간을 가볍게 눌러 죽이겠지만 보통 코끼리를 맹수로 생각하지 않으니 코끼리가 그렇게 위험한 동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거대함에 압도당하는 기분이란. 어린 악어와 같은 강에 있었을 때도 신기하기만 했지 쫄진 않았었는데. 심지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코끼리들은 코끼리치고 별로 크지 않은 어린 코끼리들이었는데도, 크기가 크다는 게 그 정도로 위협적으로 느껴질 줄은 몰랐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코끼리들은 아주 귀여웠다.
코끼리에게는 바나나를 먹여볼 수 있는데, 이때도 쫄았다. 내가 그렇게 쫄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코끼리 앞에서 당당하게 바나나를 대뜸 들고있기도 처음엔 은근히 쉽지 않았다. 코끼리를 좋아는 하지만 그렇게 자세히 그리고 가까이 볼 기회도 별로 없는 게 보통이니 당연한 일이지 싶다. 코끼리 코도 길다는 것만 알지 그 코의 끝부분은 어떻게 생겼는지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코끼리의 코는 정말 '코'처럼 생겼다. 돼지코를 길게 늘인 것 같이 생겼다. 그 코로 바나나를 슥 감아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데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정말로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네. 바나나를 주면 코로 먹지요. 코를 정말 손처럼 쓰는 것도 걸어올 때 팔락팔락하는 귀도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코로 모래 몸에 끼얹는 것도 귀엽고 그냥 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코끼리들 너무 좋아. 코끼리는 왜 저렇게 다들 깜찍하게 생겼을까?
코끼리들을 구경하고 바나나를 먹이다가 인간들도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고기와 채소를 국물이 자작하게 조리한 음식을 밥과 함께 먹는데, 인간 밥도 참 맛있었다. 식사하고 주변 해먹에 늘어져있다가 2시에 커피를 마신다. 몬둘끼리에도 커피 플랜테이션이 있어서 커피를 내준 것 같다. 연유는 마음대로 추가할 수 있도록 따로 주었다. 코끼리들과 바나나로 놀다가 배부르게 식사하고 탱자탱자 놀다가 커피 한 잔 하고, 코끼리와 수영하러 출발한다. 신선놀음도 이정도는 아닐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 독일인과 얘기했는데, 그 사람은 프놈펜부터 3주동안 여행 중이라고 했다. 시하누크빌 얘기를 해줬는데 나는 그곳이 제주도같은 곳일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티 센터는 중국인이 너무너무 많고 중국어 간판도 너무 많으니까 그냥 바로 섬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 예상외인걸. 그날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까 카지노와 관광 발전이 한창이라고 한다. 이게 차이나머니라는 건가? 캄보디아의 제주도라더니 그건 너무 옛날 정보인 것 같다. 나와 전혀 반대로 여행을 하는 독일인은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라오스에 갈 거라길래, 방비엥이 한국 여행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어서 한국인이 정말정말 많다고 들어서 난 가지 않았고, 라오스 남부에 가서 편하게 쉬었더라는 얘기를 조금 했다. 그 때쯤에 한국 여권으로 비자 받기가 쉬워져서 비자얘기도 조금 했었는데 그때 여행은 잘 했는지 궁금하다. 난 결국 시하누크빌에 가지 않았다.
주변 폭포에서 코끼리와 수영하러 출발하는데, 코끼리와 수영하지 않아도 폭포에서 노는 건 재밌다. 코끼리가 수영하고 싶을 땐 수영하겠지만 내가 갔을 때는 별로 물놀이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나보다. 바나나로 유인하기도 하는데, 싫다는 코끼리를 끌어들이기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수영을 즐겼다.
수영을 못해도 코끼리가 물 마시는 것 정도는 볼 수 있으니 좋았다. 왜 마지막에 저렇게 물을 흩뿌리는지는 알 수 없다. 코끼리랑 얘기가 통하면 재밌을텐데.
코끼리와의 행복한 한때가 끝나고, 그 엉덩이아픈 트럭을 타고 다시 달렸다. 정말 어지럽고 흙먼지가 장난아니니 손수건이라도 챙겨가는 게 좋다. 코끼리 투어는 라오스를 떠나고 처음 생긴 즐거운 일이었다. 날짜를 잘못 예약하긴 했지만 금방 해결해주었고 코끼리들은 귀여웠고 계곡물에 몸도 담궜고. 그러나 아직 캄보디아에서의 고난은 끝이 아니었고, 난 그걸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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