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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태국

영혼을 탈탈 털린 태국 왕궁 왓 프라깨우

by 마리Mary 2019. 10. 11.

우선, 이 거대한 왕궁 얘기를 하기 전 지도부터 올려본다.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는 영어로 the grand palace라고 부른다. 하지만 왓 프라깨우는 이 왕궁 안에 있는 사원이지, 엄연히 다른 걸 지칭한다. 태국의 왕궁이 아주 크게 있고, 그 안에 있는 큰 사원이 왓 프라깨우인 것. 왕궁의 총 면적은 218000제곱미터, 축구장이 30개 이상 모여있는 정도의 크기이다. 축구장이 세 개 모여있는 게 10개 있으면 된다. 잘 와닿지 않는 크기. 내국인에겐 무료, 외국인에겐 500밧의 입장료를 받는다. 긴바지와 반팔티를 입는다. 하지만 신발은 쪼리도 상관없다. 애초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곳이 꽤 있으니, 동남아 여행은 무조건 쪼리를 애용하자.

 

왓 프라깨우 입장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반까지.

왓 프라깨우 입장료, 500밧. 10밧baht은 약 400원이다.

 

들어가면 도깨비 수호상과 앙코르왓 모형이 반겨주는데, 뒤의 건물은 허 프라 낙으로 사망한 왕족들의 유해가 있다. 도깨비 수호상은 야크샤 상이라고 부르는데 악령들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도깨비와 함께 세 개의 거대한 탑이 있다. 두 번째 사진에 온통 금색인 육중한 금탑은 프라 씨 랏따나 제디로 부처의 전신 사리(그러니까, 유골)가 있다. 첫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초록색으로 장식된 금탑은 프라 몬돕으로, 내부는 진주로 장식돼있고 왕실 도서관으로 쓰였는데 불교 서적을 보관중이지만 공개하지 않는다. 다음 아래 사진 왼쪽에 보이는, 사원 지붕위로 솟아있는 기둥은 쁘라쌋 프라텝 비던이라고 한다. 나도 이름은 방금 팜플렛을 보고 알았다. 태국어는 정말 어려워.

 

태국 사원에서 정말 남다른 건 지붕의 모양이다. 유약을 바른 기와판은 마름모나 원형인데 눈이 쨍한 주황색과 청록색은 정말 반짝반짝 빛이난다. 게다가 온통 24k 황금으로 번쩍거리는 사원의 내외부와 불상은 너무너무 더운 날씨와 수많은 동서양 관광객도 잊을 만큼 놀랍다. 안그래도 번쩍번쩍한데 하루종일 햇빛이 내리쬐니 말그대로 눈뜨기가 쉽지않다.

 

이 사진을 보고있자면 꼬마마법사 레미에서 주인공들이 찾아갔던 전설의 황금도시 엘도라도가 생각난다. 브라질 아마존의 그 엘도라도를 모티브 삼은 곳. 파티시에가 되려는 시험에서 심사관은 자기가 엘도라도에서 맛본 과자를 재현하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엘도라도에서 만난 마녀는 '언젠가 누군가가 힘든 여정 끝에 엘도라도에 도착했을 때, 그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자 만들었다'던 과자를 권한다. 그 말을 듣고 주인공들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엘도라도의 과자를 맛본다. 이곳의 지친 자를 달래는 엘도라도 과자라면 출입구에서 파는 시원한 태국식 아이스 밀크티가 아닐런지.

 

서양사 강의를 들었을 때 대항해시대의 동기인 3G(gold, glory, god)를 설명하며 진짜 목적이 뭐였을까요? 명예? 신? 금이었겠죠, 하는 남교수의 설명도 떠오른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금을 엄청나게 가졌다. 그들이 만졌을 금에 둘러싸인 모습이 궁금했었다. 좋았을까. 당연히 좋았겠지. 위 사진처럼 보이는 것도 깔고 앉은 것도 전부 금이었을까. 이 넘쳐나는 금 때문에 스페인이 몰락했다는 걸 배웠을 땐,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엘도라도 과자의 맛보다 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는 금과 은이 아니라 생산능력임을 고고하게 설명할 때 스페인은 얼마나 속이 뒤틀렸을까.

 

저 멀리 태국 국기가 펄럭인다. 불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려고 축조하기 시작했다. 사진의 불탑은 크메르 양식으로, 아래의 기단에 불상을 놓는다. 얇고 긴데다 색감까지 옅고 맑은 하늘색이라 굉장히 우아하게 생겼다. 

 

무겁게도 탑을 떠받치고 있는 도깨비까지도 화려한 옷을 입고있다.  게다가 저 입을 벌리고 있는 조각마저도 얼마나 섬세한지 사실 이 도깨비만 한 시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왓 프라깨우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반, 여기서 완전히 나온 시간은 2시였다. 세 시간 반 동안을 돌아다녔지만 속속들이 보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 만큼 넓고도 섬세한 사원이었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놀라운 이 사원에서 가장 매료된 건 이 프라 위한 엿이라는 건물에 달린 탑이었다. 프라 위한 엿에는 수많은 불상이 안치돼있다고 한다. 이미 거대한 세로사진을 올렸지만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이 탑의 디테일에 감동까지 받게 된다.

 

조잘조잘 깎여져 있는 수많은 꽃들과 꽃들의 꽃잎과 이파리 디테일, 그리고 색감까지 뜯어보자면 나노단위로 뜯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조각을 저렇게 높게? 다시 봐도 그저 들여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탑이다. 이 탑이 있는 프라 위한 엿 건너편에는 동쪽 벽이 있는데, 이 동쪽 벽에서부터 벽화가 그려져있는데 정말 섬세하다. 어느정도로 섬세하냐면 각각의 인물 얼굴이 전부 미묘하게 다르다. 게다가 벽화에서조차 금을 놓지 않아서, 벽화 속 왕궁과 인물들의 갑옷 등 반짝반짝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벽화는 벽에 붙어있고 벽 위엔 지붕이 드리워져 있으니, 구경하다 지치면(반드시 지치게 된다.) 그늘을 천천히 걸으며 벽화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 뒤의 탑은 이름도 모르겠는 탑이지만 저 안에 귀여운 작은 초록색 종까지 금장식이 되어있다. 바로 이 왓 프라깨우를 기점으로 동남아에서 더 오래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동남아 여행의 방향을 바꿨다. 망고스틴만 먹기엔 아까운 곳이었던 것이다!

 

Emerald Buddha, Wikipedia

태국 국보 1호는 온통 초록색이라 에메랄드 불상으로 불리는 불상이다. 왓 프라깨우에 이 에메랄드 불상이 있어서 왓 프라깨우가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에메랄드 불상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보러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많은 종교인들이 기도하고 절을 드리고 있었다. 안이 좋았던 건 시원해서가 가장 컸다. 그런데 에메랄드 부처는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위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정확한 크기는 높이 66cm, 폭 48.3cm. 상당히 조막만 해 보이지만 영롱한 초록색만은 선명했다. 마치 케언즈 열대우림에서 율리시스 나비를 봤을 때처럼. 그런데 이 에메랄드 부처는 에메랄드로 만들어지진 않았고, 녹색 옥을 깎아 만들어졌다. 귀여운 디테일은 이 에메랄드 붓다는 하기, 우기, 건기마다 계절에 맞는 승복으로 바꿔입는다는 것. 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국왕이 손수 승복을 갈아 입힌다고 한다.

 

이 부처는 1434년 어느 사원의 무너진 탑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흰 석고로 둘러싸여져 있어서 평범한 불상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탑에 벼락이 떨어져 석고가 벗겨졌더니 영롱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너무 드라마틱해서 오히려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비하인드 스토리다. 후에 람빵이라는 태국 북부 지역에 있다가 왕위 계승 문제로 라오스로 옮겨갔다가 군대에 의해 방콕으로 반출됐다고 한다. 역시 반짝반짝 빛나는 건 모두가 갖고싶어 하는 법이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짝끄리 마하 쁘라쌋 홀 이라는 왕궁의 홀까지(맨 위 사진의 26번 건물) 구경하고 슬슬 지쳐갈 때 쯤 퀸 시리킷 섬유 박물관(Queen Sirikit Museum of Textiles)을 발견했다. 정말 너무 지쳐있었지만 흰 건물이 깔끔하고 단정하게 빛나고 있었으므로 지나칠 수 없었다. 박물관에서 감사하게도 부채를 나눠줬다. 박물관 내부는 정말 시원하고 깔끔했고 고급스러웠다. 2층 박물관이었는데 시리킷 왕의 실크사업에 대한 내용과 실제 입었던 맞춤복, 태국 전통의상들, 각종 문양들이 전시되어있었다. 특히 전통문양들이 생각보다 너무 고급스럽고 멋있어서 이 박물관에서만 한 시간을 관람했다. 더위도 식힐 겸 꼭 가보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1층 기념품점에서 아주 멋진 우산과 컵을 샀다. 섬유 박물관이고 태국이 섬유로 유명한 것도 있는 만큼 실크 제품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보여서 손수건도 사고 싶었다. 또 텀블러를 살 것인가 컵을 살 것인가 엄청 고민했는데 땡볕에서 사원을 구경하다보니 손수건보다는 양산 생각이 절실했고, 텀블러는 어차피 들고다니지도 않을 거 집에서라도 쓰자는 생각으로 컵을 샀다. 태국 여행 중 유일하게 이곳에서 카드를 사용했다.

 

우산, 900밧. 약 35,000원.

컵, 450밧. 약 17,000원.

 

한국돈으로 생각해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우산은 폈을 때 모양도, 새겨진 패턴도, 제품의 질도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동남아에선 훌륭한 햇빛 가림막이 되었고 한국에 와서는 한 번 피면 길거리 모두가 쳐다보는 관종템이 되었다. 비록 이후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can i carry this on board를 랩처럼 말해야 했지만. 컵 또한 번쩍번쩍 빛나는 금박장식이 볼때마다 아주 흡족하다. 비록 캐리어 공간이 터져나갈 것 같아 매번 숙소에 짐을 버리고 와야 했고 혹여 깨질까 노심초사했지만.

 

태국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 놀란 건 태국이 동남아 국가 중 유러피안에 의해 지배당한 적 없는 유일한 국가였다는 거였다. 이토록 힙한 국가라니. 이런 생각으로 다가갔던 왓 프라깨우 탐방기는 이걸로 끝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바로 아래에 있는 왓포 사원으로 향했다. 이미 많이 지쳐있었지만, 얼굴이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왓포 사원을 보던 와중에 해가 지기 시작했으므로 죽지않고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