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 간다고 하면 모든 로컬들이 입모아 '거긴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곳이다. 근데도 갔다. 왜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다. 이때쯤 결정한 것들은 설명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가서 숙소는 가까운 yha에 묵었는데 버스정류장이 정말 가까워서 꽤 괜찮았다. 3일 있었는데 남쪽까지 가보려고 교통카드를 사고 10달러 정도 충전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때쯤 내린 결정은 설명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다.
캔버라에 전쟁기념관이 있는데 무료라고 해서 가봤다. 기념관보다는 큰 박물관에 가까운데 전쟁에 아무 관심도 감흥도 없어서 바로 나왔다. 박물관 내부 말고, 2층 외부에 양귀비가 달려있는 복도하고, 성당같이 만들어놓은 홀이 예쁘다. 저 양귀비는 참전해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건데 뉴질랜드도 양귀비를 쓴다.
이게 양귀비 복도 끝에 있는 hall of Memory 의 비잔틴 돔 천장인데 이것만 보면 그래도 캔버라 갔다오길 그것도 전쟁기념관에 갔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웅장한 색감이 너무 좋았다. 이 홀은 모자이크 인테리어고 높이는 24미터정도인데 천장을 보고있으면 빨려들어갈 것 같다. 영 틀린말은 아닌게 사망자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컨셉이기 때문이다.
도로가 잘 정돈돼있고, 잘 구성돼있는 건 거의 모든 호주 도시의 특징이지만 캔버라가 더한 것은 건물과 도로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적이라는 것이다. 헬기타고 보면 정말 볼만할 것 같은 도시였다.
캔버라 갔다오길 잘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뇨끼다. 캔버라 남쪽에 있는 곳인데 이름은 penny university cafe 다. 요상한 이름인데 하여간 그렇다. 메뉴 설명은 preservced lemon and parmesan semolina gnocchi with seasonal greens, spiced carrot sauce and buffalo ricotta, 한 마디로 고기가 없는 비건메뉴여서 좀 망설였는데 이게 가장 나아보여서 시켰고 아주 올바른 선택이었다. 가격은 26달러로 비싸지만 seasonal greens에 포함돼있는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콩이 너무 크리미하고 고소했다. 요리 막 서빙됐을 때 생각지못한 뇨끼모양이 좀 당황했는데 바삭하고 쫀득하고 고소하고 너무 맛있었다. 차는 처음 시키려던게 안된대서 민트, 페널, 레몬그라스하고 생강이 들어갔다는 우롱티를 시켰는데 예상 외로 잎차에 거름망으로 걸러마시는 방식에 티팟도 둥근모양이 가까웠고 잔도 알맞게 따듯했다. 요약하자면 기본은 했다는 것이다. 이게 예상 외였던 건 내가 가진 선입견 중 하나 때문이었다. 백인들이 차 얘기를 하고있거나 팔면 (그게 홍차가 아니라 동방미인같은 거면 더더욱)(동방미인은 우롱차의 한 종류다. 메뉴판에 우롱차라고 써놓지 않고 아시안뷰티 내지는 오리엔탈뷰티라고 써놓는 것이 포인트다) 니네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니 하게돼서 호주에서 한 번도 차를 시켜본 적이 없었는데, 한 모금 마셨을 때 우롱차의 부드럽고 약간 묵직한 맛과 한 모금 마신 다음 숨으로 나는 레몬그라스하고 생강 향이 빠져나오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아무것도 없다는 촌구석 캔버라에서 이런 맛집을 발견하고 타즈매니아 데본포트로 가는 게 기대돼기도 했다. 거기서도 만족스러운 맛집을 찾아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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