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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시드니, 멜번, 캔버라

주인공은 돌덩이 8개일까 바다일까 - 호주 멜버른 그레이트 오션 로드

by 마리Mary 2019. 1. 4.


한국에서 크리스마스엔 집에서 쉬거나 나간다 해도 인기는 없는데 맛있는 식당에 가서 웨이팅 없이 맛있는 스테이크 써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건 멜버른에서도 변하지 않아서 크리스마스는 지루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심심하게 보냈다. 멜번이 파인다이닝과 커피로 유명한 건 알고 있지만 뉴질랜드에서 6주를 보내고 나니 어쩐지 호주는 굉장히 시시해졌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좀 더 신나볼까도 했지만 벌써 그리워진 뉴질랜드의 빨간 나무와 그간 지내왔던 방식 때문에 멜번에서는 거의 호텔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산타클로스가 서핑을 한다는 남반구에서 크리스마스를 맞는 건 뭔가 새로울 거라고 종종 생각했다.


그건 멜번에서 흰 크리스마스 트리와 긴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를 보자마자 깨졌다. 항상 북반구에서, 11월이 춥고 눈이 내리는 겨울인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낸 사람으로서 눈 내린 크리스마스 트리는 새로울 것도 아니지만, 반바지에 나시를 입어도 더운 12월의 멜번에서 당장 열사병으로 죽을 것 같은 털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와 눈 내린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있다니. 호주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는 전혀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있던 곳이 멜번의 중심가여서 추운 크리스마스가 익숙할 관광객이 대상이었다라고 하면 조금 납득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크리스마스는 덥다라는 게 기본일 나라에서 전형적인 추운 크리스마스의 장식을 본 건 실망스러웠다. 호주에서 나고자란 호주인이 이런 전형적인 겨울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면 그건 미디어의 영향일 것이고, 그게 나라고해서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무슨 무슨 날이라고 해서 들뜨는 걸 싫어하는 내가 캐롤은 듣는 것, 왜 좋은지 설명도 못하면서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하는 건 정말 내 취향일까? 아니라는 생각에 그날 재생목록의 캐롤을 지웠다. 당장 몇 시간 전에 좋아했던 노래도 막상 지워버리면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캐롤은 지웠지만(하지만 파블로바는 맛있다.) 유명하다는 건 봐줘야 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멜번의 관광지중 하나인데, 도로 자체는 바닷가 옆의 구불구불한 찻길이고, 왼쪽으로 호주에서 가장 예쁜 바다를 볼 수 있다. 구름낀 날이었지만 브룸에서 봤던 바다보다 예뻤고, 퍼스 로트네스트 섬의 인도양만큼 예뻤다. 투어버스 좌석은 진행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에 앉으면 된다. 12시 쯤 작은 마을에 들려 점심을 먹는데 Bay Leaf Cafe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남직원이 와서 커리같은 걸 추천해줬지만 여전히 쌀을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고 난 더운 날 뜨거운 건 안 먹는다. 커리보단 낫다고 생각해서 크랩버거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바삭한 빵은 버터냄새 가득했고 무엇보다 차가운 게살이 통째로 올라가있는데 탱글탱글하고 비리지도 않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달리면 12사도라고 불리는 돌덩이 12개가 모여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4개는 이미 무너졌고 8개만 남아있다. 바다가 질릴 때 쯤 도착하는데.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많았다. 시드니 블루마운틴보다 많았다. 구름낀 날이었는데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아서 한국에서 타고다니던, 두번째 정류장에서 꽉 차는 버스가 생각났다. 그래서 사진만 빨리 찍고 나왔다. 



15분 정도 걸리는 길을 만들어놨는데 그 길을 기준으로 한 쪽에는 2개, 한 쪽에는 6개가 남아있다. 20분 정도 걸리는 헬리콥터를 탈 수도 있는데 투어버스로 오면 시간때문에 못 탄다. 헬리콥터는 별로 타고싶지 않았지만 볼거리가 좀 떨어져있고, 멜번에서부터 몇시간 달려야 해서 관광지마다 볼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안 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사람은 많아서 운전해서 온 다음 근처에서 하루 묵고 사람들 몰리기 전에 일찍 가서 충분히 감상했으면 정말 좋았겠다고, 그리고 이미 4개나 무너졌다고 하니 나머지 바위가 무너지는 걸 볼 수 있다면 그건 좀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6개가 전부 나오는 사진을 찍기가 은근히 어렵다.



8사도를 보고 난 다음엔 loch ard gorge에 가는데 계단으로 아래 작은 해변까지 내려갈 수 있다. 물론 안 내려갔다. 인파에 바닷바람에 현기증나서 여기까지는 돈아깝고 시간아까워서 이딴게 명물이라니 염병천병하고 있었는데



런던 브릿지는 좋았다. 원래는 사진 오른쪽의 바위 귀퉁이하고 섬처럼 분리돼있는 바위가 연결돼있었는데 1990년에 그 부분은 무너졌다. 여기까지 안 오는 투어도 있는지 시간대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없어서 데크에 서 있을 수 있었고 또 12사도보다 훨씬 멋있었다. 12사도는 이름만 간지폭풍이고 서있는 바위대가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런던브릿지는 정말 다리같이 생겼다. 또 여기까지 올 때 쯤엔 해가 넘어가려고 내려오기 시작해서 햇빛이 장난아니다.



그래서 결론은 뭐가 아무리 좋대도 사람 많으면 그냥 집에 있던가 집앞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